얻은 것과 잃은 것 - 김일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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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기심과 반항심으로 똘똘 뭉쳐있었던 나의 십대시절을 돌이켜 보려고 한다. 다른 이들은 이 시기를 사춘기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나의 생 각은 조금 다르다. 물론 나의 삶이 평범한 보통 사람들과 같은 모습으로 진행 되었다면 이와 같은 생각을 결코 하는 일은 없었
겠지만 말이다.
 지금에서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흔히 남들이 통과의례 로 겪는 평범한 사춘기는 아니었다. 순간의 쾌락을 얻고 호기심 을 충족시키고자 내 인생 전체를 걸고 악마와 거래하던 무지하
고, 바보 같은 시절이었다. 그때 나는 흔히들 말하는 불량청소년이었다.
 요즘에는 일진이라는 말도 쓰고 있지만, 나는 내가 왜 그런 불량청소년으로 분류 되었는지 스스로 의아함을 느끼면서 그 모습을 즐기고 있었다. ‘불량청소년’으로 백안시 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쓰는 이해 할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이다. 내 눈치를 보며 슬슬 피하는 또래들을 보면서 느끼는 우월감과 자만이 나의 잘못된 선택을 부추겼는지
도 모른다.
 나의 유년 시절은 참으로 외로웠다. 그리고 불만투성이였다. 내가 필요로 한 것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 줄 수 있는 사람과 그런 불만들을 함께 토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나에
게 다가온 사람들이 있었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은 참으로 즐거웠다. 주위로 부터는 못된 녀석들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들었지만, 그래도 우리들은 함께 어울리는 그 순간들을 행복하게만 받아드리고 싶었다. 우리들은 어른들의 생활과 모습들을 동경하기도 했다. 어른들이 취하는 모습들을 따라하는데 한 치의 두려움과 망설임도없이 행동으로 옮겼다. 담배를 피고 술을 마시며, 여자들과 함께 어울려 어른이 다된 양 어깨에 힘을 주고 휩쓸려 다녔다. 외롭고 불만투성이였던 나에게 행복감과 즐거움을 안겨주던 친구들이 내 곁을 떠날까봐, 나를 따돌릴까봐 죄책감은커녕 오히려 대담해지려 무던히도 애를 썼다.
 처음에는 화장실에서 숨어 피워대던 담배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들은 무서운 것이 없었다. 결국에는 담배를 입에 물고 거리를 활보하게까지 되었다. 그때 내 나이는 십대에 불과했다.
담배가 떨어지면 지나가던 어른들에게 담배를 요구했고, 돈이 없으면 돈을 요구했다. 불량스러운 그 행동, 그 몸짓 하나까 지도 멋스럽게 느껴지던 순간이었으니까 가능했다. 하지만, 내가 담배를 피우고 무례하기 그지없는 행위를 거침없이 자행하 게 된 진짜이유는 어렵사리 친하게 된 그 친구라는 녀석들의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 무리에서 나만 튀는 행동을 한다면 그들은 나를 받아주지도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는 술집을 전전했고, 여자들과의 애정행각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여자들과의 관계가 없는 것이 부끄러운 모습으로 평가될 정도였다. 그러나 나의 모습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 무서운 호기심이 나를 유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무렵 우리들에게는 선배가 있었다. 학교 선배도 있었고, 동네 선배도 있었고….“ 선배는 하나님과 동기동창생이고, 마리아의 기둥서방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선배라는 존재는 거의 신격화 되어 있었다. 그런 선배들이 은밀한 의례행위로 사용하 던 것이 있었다.
 “본드”
나와 나의 친구들은 그것이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것인지? 알수가 없었다. 왜 형들이 저걸 하고 있나? 의아해 할 정도로….
 그러나 언제나 경외의 대상이었던 선배들의 의례행위라면 결코 우리도 아니 나는 빠질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본드의 냄새를 맡아보게 되었다. 그런데 좋다는 감정은 느낄 수는 없었다. 머리만 아플 뿐이었다. 입에서는 냄새가 진동하고….
 그 냄새를 없애기 위해 나는 집에 돌아와서 배가 고프지 않아도 배가 고픈 척을 했었고, 별로 당기지 않는 김치를 한가득 입에 베어 물고 먹었다.
 그렇게 나의 첫 경험의 순간이 지나간 것이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본드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번에 하면 좋은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그래, 좋으니까 선배들도 저렇게 하는 거겠지!”
 사용횟수는 계속 늘어가기만 했다.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던 친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 역시도 나와 같이 온종일 그것을 생각했고, 우리는 삼삼오오 모여 일일행사처럼 본드에 취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이 되자 나는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아니 아직은 어린 나이에 느낄 수 없었던 해방감과 쾌감 같은 것을 느
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탐닉은 계속 되어갔다. 이것이 중독을 향해 한걸음씩 다가가는 것이라는 것은 꿈에서 조차 생각해보지 못했고, 그 순간 느끼게 되는 그 기
분을 즐기는데 만족하기만 했었다.
 그러던 중, 나를 포함하여 친구 몇몇이 본드 냄새를 맡다가 경찰관에게 잡힌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들은 꿀밤을 한 대씩 맞고,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는 야단만 듣고서 파출소를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경험이 오히려 나를 대담하게 만들어 갔다.
 “그래, 어차피 이거 하다가 잡혀도 그냥 한 소리 듣고 나오면 되는 거지 뭐!”란 잘못된 생각과 판단을 하게 한 경험이 된 것이다.
 그 후 나는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어도 본드를 찾았고,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또는 기분이 좋아도 본드를 찾을 정도까지 되어 버렸다. 나의 사고의 모든 초점은 본드 냄새를 맡아서 느끼는 그 쾌감만을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쾌감을 안겨주는 약물의 맛을 보게 된 나는 또 다른 약물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 녀석이 가지고 온 대마초와 필로폰. 말로만 듣던 그런 것을 어린 나이에 직접 눈앞에서 보게 될 줄이야.
 “이걸 하면 더 좋은 기분을 느낄 수가 있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과 호기심으로 나는 더욱더 중독자의 모습을 갖추어 가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사회와 법은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나의 이런 약물사용은 진작부터 불법적인 행위였고, 계속되는 나의 행각에 법과 가족들은 더 이상 수수방관만을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십대의 나이에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사회와 떨어져 격리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반성을 할 줄 모르는 참으로 우매한 사람이었다.
 나에게 이런 고통의 시간을 안겨준 가족들이 미웠고, 사회와 법이 저주스러웠다. 그랬기에 더욱 더 보란 듯이 약물을 사용했다.“ 봐라! 당신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 버린 거다!”라고 외치
면서….
 하지만, 이런 나에게 남은 것은 사랑도 아니었고, 관심도 아니었다. 함께 어울렸던 친구들도 하나둘씩 멀어져갔고, 결국에는 수많은 전과와 병들어 약해진 몸 밖에 남은 것이 없었다.
내 나이 어느덧 36세, 약물을 처음 사용한지도 벌써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가 버렸다. 그 20년 동안 내가 느꼈던 쾌감과 즐거움과 행복감은 얼마나 컸을까? 높은 담장 안에서 살며 잃어버
린 나의 청춘의 대가로 충분한 값어치를 할 수 있는 것인가?
 한 순간의 잘못된 생각과 선택이 20년이라는 세월동안을 나를 힘들게 하였다. 아니 앞으로도 나는 계속 살얼음판을 걸어가는 그 조심스러운 심정으로 남은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한
순간만 방심하거나 자만한다면 나는 다시금 약물 앞에 한 없이 무력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 갈 테니까 말이다.
 많은 약물남용자와 중독자들이 생겨나고 있을 테고, 또한 많은 중독자들이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살고 싶다.
 잃어버린 나의 지난날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남은 인생만큼은 안정과 행복을 누리면서 살아가고 싶다. 지난날의 모습들이 얼룩졌다고 해서 그 사람의 전체 인생도 얼룩으로 물든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그 얼룩진 경험을 통하여 더욱 성숙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한 더욱 멋진 삶을 이루어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믿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의 나는 조금은 다
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약물이 주는 쾌감과 즐거움만을 원하게 되면 어떤 모습이 되고, 어떤 상황이 발생 할 수 있는지를 아직은 모르고 있는 그들을 위해 알려주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지금 약물중독상담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아직은 부족하고 미흡한 부분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자신감을 얻으며 하루하루를 약물과의
힘든 전쟁에 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자만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감이 지나쳐 자만심이 되는 그 순간이 바로 내가 넘어지는 순간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소위 말하는 가방끈이 짧다. 그렇다고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약물에 취해 중독자의 모습으로 살기 싫다는 마음과 비싼 대가를 치룬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약물이 주는 쾌감과 유혹을 떨쳐낸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끌려 다닐 수만은 없는 것 아니겠는가!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이지, 약물이 아니
기에….
 약물이 주는 그 고통을 당하고 있는 당사자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주변인들에게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우리가 아직은 포기할 때가 아니라고”“최후에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 웃는 모습을 원한다면 지금보다는 더 많은 노력과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시기라고”
 마지막으로 나를 비롯하여 약물 의존자 모두가 잊고 있는 한 마디를 기억한다.
 “네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며, 세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 입니다. 우리들은 행운을 준다는 그 네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얻기 위해 정말이지 많은 세잎 클로버를 짓밟으며 살아왔던 것입니다.”
 
<2006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발간 수기집  '후회와 눈물 그래도 희망이'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