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아니야 - 윤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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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흐름이 유수와 같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내 나이 어느덧 서른여덟, 불혹을 눈앞에 두고 있는 중년이 되었다. 옛 성현 공자께서 마흔 살인 불혹지년(􂵾􄑯􃴝年)에 이르러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반해 지금에 내 모습을 바라보면 부끄러울 뿐 이다.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순수했던 어린 시절과 히로뽕을 배우고 난 뒤 엉망이 돼 버린 지금까지의 일들이 오버랩 되며 마치 한낮의 잠에 빠져 때론 달콤하기도 하고 때론 악몽 같던 꿈을 꾼 듯하다. 이제 꿈에서 깨어나 일상으로 돌아가려 한다. 이마에 맺히는 한 방울 땀에 보람을 느끼며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그리고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보자면 건강하고 밝은 사회를 위해 살아가고 싶다. 처음 히로뽕을 접하게 된 것은 스물여덟 살 때 이다. 경기도 OO시 OO읍에서 술집 매니저 생활을 하고 있던 중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는데 바로 이 전화 한통이 내 인생을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한 것이다. 몸서리 처지도록 무서운 백색공포로 말이다. “호섭씨?” “네 그런데요. 누구십니까?” “저 훈재라고 하는데 환규 형님 아시죠? 환규 형님 동생 됩니다. 형님께 호섭씨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한번 만나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다가 상의 할 일도 있고 해서 이렇게 전화를 드린 것 입니다.” 얼굴은 본 적이 없지만 서울에서 사채업을 하는 환규 형님 밑에서 일 할 때 얘기를 들어 이름을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네, 형님께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아는 친구가 히로뽕을 살 사람이 없냐고 하며 한번 알아봐 달라고 하기에 호섭씨 생각이 나서 연락을 드리게 됐습니다. 생각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을 주십시오.” 전화번호를 받아 적은 후 전화를 끊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내가 몸담고 있던 업소의 사장인 동시에 친한 형이기도 한 완수 형에게 얘기를 하게 됐고 전후 사정얘기를 들은 형이 히로뽕을 구해서 아가씨들에게 주며 일을 시키면 좋을 것 같다는 말에 그럴 듯한 생각 같아서 히로뽕을 구입하게 됐다. 그런데 세상일이란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많은 것 같다. 이렇게 술집 아가씨들을 유혹 할 목적으로 구입을 했던 히로뽕인데 히로뽕을 사온 뒤 호기심이 들었고 이에 투약을 한 끝에내가 먼저 중독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애초에 의도했던 아가씨들 에게는 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온 몸을 휘감는 짜릿한 쾌감에 빠져 이때부터 현실의 생활들은 관심을 버린 채 하루하루 마약의 늪에 빠져 들었다. 약을 계속 구입해야 했기에 돈이 필요했고 수입이 별로 없던 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전셋집 보증금을 빼서 약을 구입하게 됐고 나날이 망가져만 갔다. 이 당시에는 가정도 직장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맹목적인 마약의 탐닉만이 있을 뿐 이었다. 급기야는 타고 다니는 차까지 팔기에 이르렀고 계속되는 투약으로 인해 몸에서도 이상 징후가 오기 시작했다. 처음 투약 당시에는 짜릿한 쾌감만 있을 뿐 부작용 같은 건 있지도 않았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러한 생활이 지속되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분열을 일으켰고 망상에 빠져 현실과 환청, 환각을 구별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고 죄를 지면 언젠간 벌을 받는 법. 결국 히로뽕 투약 죄로 구속이 되었고 이때부터 지금까지 다섯 번의 구속 수감생활을 하게 되었다. 나쁜 마음을 먹고 구입했던 히로뽕이 결국엔 부메랑이 되어 돌아 온 것이다. 1996년 처음으로 히로뽕을 알게 된 후 지금까지 다섯 번의 구속으로 인해 8년이란 세월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지금은 다섯 번째 구속이 되 어 2년의 실형을 선고 받고 살고 있다. 호기심의 대가가 이렇게 클 줄 알았다면 결코 손대지 않았을 텐데 마약의 부작용 보다는 즐거움을 앞서 생각 했기에 내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지 워지지 않을 아픔을 남긴 체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항상 단약을 결심 하면서도 매번 다시 손을 대게 됐었는데 이 번에 공주국립치료감호소에 가게 됐고 단약교육을 받으며 가족의 소중함과 내 인생의 소중함 등 너무도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됐고 희망도 얻을 수 있었다.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던 사회였는데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마약중독자들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단체와 사람들을 보게 되었고 나만 결심한다면 단약의 길이 그리 외롭고 힘들지 않으리란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처음 구속이 되었을 땐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말 그대로 생각 일 뿐 어떻게 끊어야 하는지 뭘 노력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그냥 단순히 끊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그치고 시간이 흐르면 유혹을 참지 못해 손을 대게 되는 잘못을 되풀이하며 10년이란 세월을 보냈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물론 내 자신이 의지가 약해 단약을 하지 못함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굳이 변명을 하자면 혼자서 결심을 한다고 쉽게 끊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절대 아니란 것이다. 본인의 노력과 함께 가족의 노력(사랑)도 필요하고 아울러 사회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처럼 국가에서 운영하는 마약중독자들을 위한 치료시설을 접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 보다 단약을 하기가 훨씬 쉬우리라 생각 한다. 생각해 보라. 낯선 도시에 가서 길도 모르는 목적지를 혼자 찾아가는 사람하고 안내자가 있어 찾아가는 사람하고 누가 먼저 목적지에 도달하겠는가? 내가 어떻게 단약을 결심하게 됐고 굳 은 의지를 갖게 되었는지 설명을 하려면 막연한 생각이 든다. 굳이 말을 하자면 우선 나를 생각하기에 앞서 사랑하는 가족을 먼저 생각했고 그 다음 내 자신을 돌아 봤으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랴? 거의 모든 마약류 사용자들은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본다. 다만 막연히 혼자 생각하는 것 하고 누군가가 곁에서 생각을 일깨워 주며 끊임없이 동기 부여를 주는 것 하곤 차이가 많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국립부곡정신병원을 비롯한 지정치료기관과 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 운영하는 송천쉼터 같은 곳을 찾아가면 단약을 위한 좋은 프로그램으로 교육을 시켜주고 있다. 하지만 길 안내를 해줄 뿐 결국 단약이라는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는 것이다. 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단약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고 자신감에 차 있다. 하지만 과거에도 혼자서 생각을 할 때는 이러했었는데 막상 출소를 해서는 결심이 무너졌던 적이 있기에 더 이상 교만함으로 혼자 자신만만해 하지 않는다. 자유가 구속당한 현재 내가 노력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있다. 부모님께 그리고 공주치료감호소에 계신 선생님들께 자주 편지를 드리며 그때마다 과거의 내 모습을 생각하며 경각심을 갖고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며 희망을 품고 있다. 어찌 보면 사소한 일이긴 하지만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처럼 작은 것부터의 노력과 실천이 이어져서 결국엔 뜻한 바를 이룰 수 있지 않겠는가? 병은 감추지 말고 널리 알려라 했다. 마약중독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고 병인 것이다. 그렇기에 내 자신이 병자임을 인정하고 정신과 선생님들과 수시로 편지를 하며 단약을 위해 노력을 하 고 있는 것이다. 좋아하는 연인사이도 오랫동안 보지 않으면 사랑하는 마음이 약해진다고 하질 않나? 이렇듯이 항상 단약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이제 두 번 다시는 마약을 접하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며 오늘 하루도 자성의 시간을 가져 본다. 믿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말이 있다. 그 동안 내 자신에 대한 믿음, 사회에 대한 믿 음이 없었기에 반복되는 잘못을 저지르고 십년의 세월을 허비하며 살았다. 그런데 이제 난 내 자신을 믿는다. 그리고 가족의 사랑을 믿으며 국가와 사회를 믿는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마약류사범들의 단속에 앞서 치료를 우선시 하고 치료에 앞서 마약중독의 무서움을 알리는 계몽을 우선시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나는 출소 후에 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 주관하는 단약 모임인 NA모임에 나가 미력한 힘이나마 보태고 싶고 나 또한 도움을 받으며 살아 갈 계획이다. 혼자 고민하기 보단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유혹에 약해지려 할 때 마다 격려도 받고 격려를 해 주기도 하며 더불어 노력하는 곳이 바로 NA, 즉 자조자들의 모임이라고 한다. 사실 마약류사범들은 이런 것을 잘 모른다. 그렇기에 내가 꼭 가보고 싶은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마약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고 싶다. 내가 그 손을 잡고 빠져 나왔듯이…. <2006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발간 수기집 '후회와 눈물 그래도 희망이'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