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시련은 남았지만 - 음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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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서른아홉. 나는 아직 안개 속에서 서성대고 있다. 무겁게 내려 앉아 허둥대는 나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듯 하다. 이제는 벗어나고 싶은데 어찌 이리도 헤매는지 모르겠다. 서른아홉이라는 세월의 절반을 마약(필로폰)으로 살아왔대도 과언이 아니다. 남은 것은 진창이 되어 썩어 문드러진 몸뚱이뿐, 저는 이렇게 절규하며 통곡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내게도 작지만 소박한 행복을 누렸던 적이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일찍 살림을 꾸미고 서로에게 정직하며 애틋한 사랑을 나누면서 살아갔었다. 지극히 평범한 행복이었지만 그것에 충분히 만족하며 살아갔었다. 그러던 어느날, 불행은 소리도 없이 내 행복 속에 파고들었고, 시비를 걸어 왔다. 마약이었다. 우연하게 접하게 된 그 마약은 그때부터 지독히도 떨쳐지지 않는 악몽이었고, 지금껏 내 행복을 무참히 짓밟아 왔다. 그렇게 불행은 시작되었다. 시작은 호기심으로 별 뜻 없었으나 이미 파고든 마약의 수렁은 차츰차츰 그 깊이가 깊어졌고 어두워만 갔다. 그렇게 착실하고 모든 일에 충실했던 내가 마약으로 인해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던 아내는 절망으로 울부짖었지만 그것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마약 속으로 마약 속으로 빠져 버렸던 것이다. 마약으로 변해가는 남편을 지켜보면 절규하던 아내가 비장한 결심으로 급기야는 경찰에 고발까지 하게 이르렀다. 그 일은 이미 두 번의 구속으로 수형생활을 마치고 난 후의 일이었다. 그렇게 맞이한 수용생활. 2년여 동안 아내의 심정은 어찌 처절하지 않았겠으며, 어찌고통스럽지 않았겠는가. 아내의 정성어린 옥수발로 2년여의 옥고를 무사히 치루고 아내 곁으로 돌아갔다. 아내의 애틋한 정성을 잘 알고 있기에 다시 주어진 삶에 충실히 임했다. 가진 기술은 부족했지만 더 이상 아내를 실망시키지 않겠노라 무던히 애를 썼다. 나만을 바라보며 누구보다도 고생을 많이 했던 아내를 위해서라도 결코 다시는 마약의 수렁에서 허우적대지 않으리라 다짐을 다지고 또 다졌다. 그렇게나마 마음을 다 잡고 살아가는 내게 유혹의 순간은 그다지 오래지 않아 또 다시 찾아들었다. 잊고 지냈던 친구가 우연히 내 소식을 듣고 찾아왔던 것이다. 그 친구는 한눈에 봐도 그때껏 마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살아 왔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는데, 그 순간 나의 잠재된 욕망이 동시에 꿈틀대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안 돼, 안 돼.’ 마음속으로는 의지를 꺾이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피어오르는 마약의 악취에 그만 허물어져 버리고 말았다. 사랑하는 아내의 정성을 배반하고 그렇게 또 다시 마약 속으로 빠져 들게 되었다. 그나마 아내에게 더 이상의 배신감만을 안기지 않겠다는 얄팍한 마음으로 아내 몰래 해온 마약이었는데 눈치 빠른 아내를 언제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아내는 절망으로 울부짖 으며 내게 매달렸다. “여보, 당신을 이렇게 잃고 싶지 않아요. 제발 마약만은 멀리할 수 없나요? 당신, 날 위해서 정신 차릴 수는 없는 건가요?” 그렇지만 이미 마약에 팔려버린 심신은 도저히 제어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버렸으니 아내의 메아리는 허공만 가를 뿐이었다. 마냥 그 지경으로 미쳐가고 있었다. 아내는 물론 온 가족까지도 내팽개치고 도저히 사람의 몰골이라고는 할 수 없게 망가져 버리고 있었다. 그런 남편을 더 이상 지켜보지 못하던 아내는 큰 결심을 한듯, 나를 불러 앉히고 비장한 모습으로 준비한 면도칼로 자신의 손목을 서슴없이 그어버렸던 것이다. 손목에서는 선홍빛 피가 울컥 울컥댔고, 급기야 정신마저 잃어버린 아내를 부둥켜 안고 울부짖었다. 아! 이 지경을 어찌 합니까. 어쩌자고 이처럼 허망한 현실이 되어 버렸을까요. 절망과 아득함뿐이었다. 지금도 그때 그 순간의 붉은 핏물들이 온 방안을 휘적시는 처참했던 기억이 선명히 떠오른다. 다행히 아내는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 왔지만 못난 이 놈은 그때의 허망하고 처연했던 기억을 망각해 버리고 천방지축 망아지마냥 또 다시 마약을 찾아 헤매고 다녔다. 아내는 결국 제게 이혼을 요구했고, 아내에게 더 이상의 불행과 아픔을 안기지 않겠노라 순순히 이혼에 응했다. 바로 얼마 후, 법원에 가서 합의 이혼을 했지만 그것 역시도 못난 지아비를 마약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아내의 마지막 고육지책 이었다. 허사였다. 그것마저도 허사였다. 나는 오래지 않아 다시 구속되어 후회만이 남는 수형 생활을 맞이해 버렸던 것이다. “아! 무엇이 나와 아내에게 이토록 고통만을 준 것일까.” “오로지 못난 남편이지만 의지하고 사람을 만들어 보려 했던 착한 아내는 그 허망한 세월을 어찌 보상 받을 수 있으려는지요.” 나는 지금 병으로 신음하고 있다. 여러 차례의 수형 생활에서 남겨진 것은 진창이 되어 버린 병든 육체 밖에는 없었다. 두 쪽의 콩팥(신장) 중에 한 쪽은 이미 기능을 상실해 버렸고, 나머지한 쪽의 콩팥마저도 거의 못 쓰게 되어 오래지 않아 만성 신부전증으로 혈액 투석까지 받게 된다는 진단까지 내려 진 상태다. 그런데 바보 같은 내 아내는 병들어 썩어진 그 몸뚱이마저도 부둥켜안으려 하고 있다. 나란 인간은 과연 타락의 끝이 어디일까. 아내와 인연을 맺은지 어언 15년, 그 세월을 지내 오면서 아내에게 안겨 준 것은 지독한 외로움과 처절한 고통뿐이었다. 이제 지금껏 못나게 살아만 왔던 나 자신을 진실한 마음으로 되돌아보려 한다. 어느 때는 화를 내고, 어느 때는 참아주고, 어느 때는 다독이고, 어느 때는 속아 주며 지금까지도 못난 지아비를 지켜주고 있는 아내에게 이제는 사람이고 싶다. 아직은 안개 속에서 허둥대며 헤쳐가야 할 시련의 몫이 남았지만 그 시련의 세월이 마감된 후에는 애처로운 아내를 위해서 꼭 사람으로 다시 서 보려 한다. 그래서 못다 한 사랑과 행복을 안겨 주겠노라 다짐 해 본다. 단란했고, 소박했던 그 예전의 행복을 되찾는 길이 멀고멀지만 아직 내게는 아내라는 희망이 남아 있기에 힘을 얻고 용기를 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돌아보면 온통 부끄러움과 파렴치 투성뿐인 내 인생, 더 늦지않게 진정한 깨우침을 불어 넣으려는 아내에게 하고 싶은 말이있다. “여보, 당신에게 미안할 뿐이야. 지금껏 나 때문에 삼켜야 했던 고통과 좌절 따위는 더는 안기지 않으려 해. 정녕 당신을 위해 살아 볼게. 사랑해!” 내 삶에서 빚어진 허상과 망상으로 더는 헤매기보다는 앞으로의 꿈과 소망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며 남겨진 시련을 잘 헤치고 이기려 한다. 지금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를 지켜주고 기다리는 사랑하는 아내에게 몸도 마음도 망가진 채 나설 수 없기 때문이다.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의 나이를 코앞에 두고, 이제는 정녕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고 사람으로 태어나 보려 한다. <2006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발간 수기집 '후회와 눈물 그래도 희망이'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