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신이 그들을 버렸다 - 홍범규

  • 조회수 5588
영등포구 당산동 마약퇴치운동본부 송천쉼터 옥상에서 한강을 바라본다. 참 오랜만에 보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십여년의 세월을 약물과 술로 흐릿한 세상만 보던 나의 눈에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 바삐 달려가는 차들만 보아도 그들의 생활이 아름답게 보인다. 약물로 세상을 거부한 채 그늘 속에서 살아온 지난 세월을 뉘우치며 그 시절을 생각해 본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시던 아버지 심정이 가슴시리도록 헤아려진다. 외아들이라 나에게 기대가 크셨던 아버지는 내 학교 성적이 하위권에 맴돌자 실망하시고 술을 드시기 시작했다. 술을 드신 채 나와 가족에게 폭력과 폭언을 일삼게 되었다. 자식을 사랑하시는 마음도 모르고 어린 나는 방황을 하게 되었다. 자연히 같이 방황하는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고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담배와 술을 배우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이미 마약의 길에 들어선 것일지도 모르겠다. 청소년 때의 담배와 술은 마약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동네를 활보하고 그렇게 세월을 보내던 중 간경화로 고생하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내겐 슬픔보다는 자유로움이 먼저 느껴졌다. 매일 친구들과 어울리며 방탕하게 보내던 어느 날 친구가 이상한 제의를 해왔다. 음악하는 형들이 환상도 보인다며 웬만큼 노는 아이들은 다 먹는다고 권유하였다. 무서웠지만 호기심과‘남들 다하는데 나는 왜 못해’라는 생각에 먼저 하게 되었다. ‘노란 알의 러미라’. 이것이 나의 인생을 앗아간 긴긴 약물중독의 시작이었다. 내 나이 18세 때 일이다. 약을 먹은 뒤 한 시간쯤 흐르자 속이 울렁거리며 어지러웠다. 몸을 못 가누며 그날은 그렇게 끝이 났다. 다음 날 그 친구가 또 찾아와 또 먹자는 것이다. 친구에게 어지럽고 울렁거려 못하겠다고 하자 친구는 저를 보며‘야! 오늘은 진짜 보내 줄께’하며 약을 내밀었다. 또 한번의 호기심에 그 약을 먹었다. 한 시간 쯤 흐른 뒤 또 속이 울렁거리며 어지러웠다. 순간 내가 가보지 못한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하늘을 날고 처음 가보는 곳에 있고 참 이상한 세상을 접했다. 그날 이후 나는 날마다 그 약을 먹게 되었다. 그 약 없이는 밤을 보낼 수가 없었다. 약과 술과 음악, 그리고 여자친구 그렇게도 멋있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 한 사람이 저에게 찾아와“야, 약만 하면 뭐하냐? 이 바보야. 이거 대마초다. 한번 해봐”하며 권했다. 그날 나는 지금까지의 세상보다 더 짜릿한 세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젠 주머니에 돈보다 약물이 있는 것이 더 든든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던 중 보다 못한 선배분이 찾아와 이렇게 살지 말고 자신과 함께 일을 하자면서 선배가 운영하는 당구장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청소와 카운터 일을 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카운터를 보는 중에 거스름돈 계산이 잘 안되는 것이었다. 뺄셈, 덧셈이 안 되었다. 그렇게 간단한 계산이…. 몸은 몸대로 엉망이었다. 숨이 차고 심장은 불안하게 마구 뛰고, 성격도 이상해져 손님들과 싸우기도 수차례, 나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해졌다. 생각나는 대로 행동하고, 절제도 되지 않았으며 심한 공황증세, 금방 죽을 것 같은 공포심, 약물과 술의 금단증상…. 이렇게 정신장애가 온 것이다. 그래도 선배는‘약물만 끊어라, 시간이 지나면 낫는다’고 위로하며 병원에 가보자고 했다. 그러나 병원은 끝내 거절했다. 내 생각엔 내가 정신병원에 갈만한 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늘 약물의 갈망에 헤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영업이 끝난 뒤 친구를 불러 몰래 약물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일 약물과 함께 살았다. 그러던 중 가게에 들린 선배에게 이런 나의 모습을 들키고 말았다. 나는 너무 당황스럽고 창피해서 그곳을 도망치다시피 나왔다. 다시 악의 소굴로 돌아온 나는‘내가 할일은 역시 즐기는 거야’라고 생각을 하면서 또 망가져 갔다. 이젠 누구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자유롭게 즐기며 살아갔다. 주위에서는 이미 약쟁이라 소문이 자자하게 났다. 그러나 그런 말에 신경을 쓸 겨를도 없었다. 약물만 있으면 아무도,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때로는 끊어보려 했지만 이미 그것에 깊이 맛이 들린 나는 무기력했다. 약물의 양도 점점 늘어가고…. 그러던 어느 날 폭력사건으로 구치소를 가게 되었다. 그때 많은 생각을 했다. 성경책을 보고, 기도를 하며 약물을 끊기로 굳게 다짐을 했다. 출소 후 취직도 하고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 다른 사람에게 인정도 받았다. 그러나 그 악의 뿌리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내민 약물을 뿌리치지 못했다. ‘오늘만 할꺼야’라며 스트레스만 풀고 다시는 하지말자라는 생각에 손을 내밀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약물을 다시하다 보니 게을러져 회사도 그만두게 되었다. 그러면서 교활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집안 식구들에게 회사에서 배운 기술로 사업을 하겠다고 유망한 사업이라고 설득해 사업을 시작했다. 여유롭게 약물을 즐기려는 나의 계략은 맞아 떨어졌다. 일은 남에게 맡겨놓고 나는 약물을 즐기고…. 이런 상태에서 사업이 잘 되었겠는가? 늘 약물에 끌려 다니며 망하기를 거듭했고, 이젠 끊어야지 마음을 먹어도 그때 뿐 어느새 약물과 대마초에 젖어 술집에서 즐기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 할 수 있었다. 돈도 건강도 다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모른체 폐인이 되어, 약물과 대마초가 없으면 술로 세월을 보내고 돈이 생겨 약물과 대마초를 구하게 되면 또 환락의 세계에 빠져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심장이 뛰고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공포심에 이대로 죽나보다 싶어 병원으로 달려갔다. 이야기를 들은 의사선생님은 정신과로 찾아가라고 하셨다. 정신과로 찾아가 모든 이야기를 했다. 의사선생님은 약물과 술, 대마초로 인해 건강이 위험하다고 입원을 권해 입원하게 되었다. 그 오랜 방탕한 세월이 나를 철저히 망가뜨렸고, 세상의 쓰레기로 만든 것이다. 이젠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3개월 입원 동안 많은 것을 생각했고 교육도 열심히 받았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이 나에게 등을 돌린 것에 대한 분노는 사라지지 않았고 갈 곳도 없었다. 식구들도, 친구들도 이젠 내 곁에 없었다. 그러던 중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송천쉼터 생활지도사를 만나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직원분들과 동료들, 전도사님의 보살핌으로 단약, 단주의 마음을 먹고 생활하고 있다. 이곳에 오게 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단약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나도 마음을 잡아본다. 단약과 교육 그리고 공부를 통해 중독이 되어 있는 힘든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새 마음을 꿈꾼다. 그리고 내 식구, 내친구들이 나에게 등을 돌린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그들을 버렸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내 자신의 환각만을 위해 그들을 버렸던 나를 용서해 주시길 간절히 바라며 여기에 오기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2006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발간 수기집 '후회와 눈물 그래도 희망이'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