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 돌아오기 - 구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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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복귀는 환영해야 하지만 그들을 보는 우리의 편파적인 잣대는 문제가 있다.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자 바람에 이리 저리 날리는 넓고 넓은 초록빛이 가득한 바다가 쫙 펼쳐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며 미친 듯 그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고, 기분에 취한 그들은 세상을 다 얻은 듯한 웃음을 짓고 있었습니다. 카메라 앵글 속의 바다가 보이는 섬, 그 외딴 곳의 풍경은 그냥 평화롭고 어디를 봐도 초록색 밭이 정겹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얼굴에 웃음이 깃든 것도 잠시, 나의 감탄도 잠시 그들의 혈투가 시작되었을 때에야 그 초록바다가 저주스러운 밭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바로“대마 밭”이었습니다.

   음지에서나 몰래 키울 거라고 생각했던 대마는 의외로 섬 전체에 마치 보리밭처럼 자연스럽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대마를 본적이 없어서 정말 대마 밭인지 아니면 그래픽 처리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대마초에 미쳐가는 사람들의 모습만은 굉장히 사실적인 듯했습니다. 마약 중에서도 유난히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서 가까운 듯 느껴지는 대마초. 그건 아마도 실질적으로 많이 피우고, 또 흔해서 이지 않을까?

   대마초를 우리가 제일 먼저 접하는 것은 아마 연예프로에 나오는 뉴스 속보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뉴스를 보면서 자라고 그 영화 속의 대마 밭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며‘저게 대마구나’, ‘ 의외로 작물처럼 키우는 구나’라는 생각을 한번쯤은 할 것입니다. 가수들은 인터뷰에서 귀가 예민해져 음악 하는데 필요해 손을 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대마초로 곤란을 겪은 가수들은 얼마의 자숙기간이 지나면 다시 노래를 부르고 음악을 만듭니다. 그들의 사회복귀는 환영해야 마땅하지만 그들을 보는 우리의 편파적인 잣대는 문제가 있습니다. 나 또한 내가 좋아한 가수의 대마초 사건 당시 얼마나 음악적 열정이 강했으면 저런 것에 의존이라도 하려했을까 라며 안타까워했고 어서 다시 자신의 모습을 찾길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누구보다 많이 반가워했습니다. 그의 결단력을 얼마나 칭찬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나 스스로도 마약 그 중에서도 대마초 정도는 쉽게 정리가 되는 담배나 술 같은 거라는 인식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나의 모습이 다른 연예인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별반 다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연예인의 그런 사건은 대부분 기억 속에서 그렇게 사라집니다. 그의 새로운 앨범에 환호성을 지르며 그의 재능에 감탄할 뿐입니다. 하지만 주변의 일이라면 이야기는 정반대가 됩니다.

이모의 모습 - 세월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 기분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네 자매 중에서도 제일의 미모를 자랑하던 막내이모는 나와 불과 10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언니나 오빠가 없는 내게는 이모라기보다는 언니 같은 존재였습니다. 유난히 엄마를 따르던 이모는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우리 집으로 들어와 살게 되었습니다. 자연히 어느 이모보다 친하게 지냈고 그녀가 결혼해서 떠나갈 때는 누구보다 슬프고 아픈 기분이었습니다. 그런 슬픔이 가시기도 전, 어느 늦은 밤 우리를 찾은 이모는 결혼식 날의 예쁜 신부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어린 나를 재운 엄마와 이모에게 그리고 아빠에게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다음날 학교에 다녀온 나는 건너 방에 누워있는 이모의 얼굴을 보게 되었습니다. 크고 쌍꺼풀이 진한 눈은 퍼렇다 못해 검게 변해버렸고, 퉁퉁 부어있는 얼굴은 마치 외계인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잠이 든 것 같은 이모를 가만히 두고 학원에 갔다 오니, 집 앞에 모여 있던 몇 명의 아줌마들은 나를 붙잡고 집에 못 들어가게 말렸습니다. 안에서는 거센 소리가 오고가고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비명 소리 같은 것도 들리고 있었습니다. 엄마의 비명소리 같은데도 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얼마 후 퇴근한 아빠가 와서야 난 집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엄마가 좋아하는 그릇들이 깨져서 뒹굴고, 아빠가 좋아하는 멸치 볶음과 김이 부엌바닥에 여기저기 널려있었습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엄마가 저 그릇에 발이라도 다쳤으면 어쩌나, 군데군데 보이는 피가 엄마나 이모 것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시끄러운 며칠이 지나고 집안에 안정이 찾아올 무렵 우리 집을 나갈 때보다 한결 가벼워진 가방을 든 이모가 돌아왔습니다. 커다란 배만 앞세우고. 그리고 얼마 후 이모는 사촌동생을 내게 소개해줬습니다. 옹알거리지도 못하고 잠만 자던 남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모가 돌아간 후 이모를 보게 된 것은,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겨울, 휘청거리는 엄마를 모시고간 병원에서였습니다. 그 겨울은 춥기만 하지 눈이 별로 오지 않았던 것 같았습니다. 간간히 전화만 오고 직접 모습을 보이지 않던 이모는 어렸을 때 우리 집 건넌방에서 본 그 얼굴로 누워있었습니다. 8년이라는 세월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 기분이었습니다.

   중학생이 되어서야 이모부라는 사람이 대마초와 술을 상습 복용해서 이모를 때리고 집에 찾아와 행패를 부렸다는 걸 알았고, 아이 때문에 이혼을 못했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이모는 간혹 전화만 할뿐이었습니다. 나 또한 연예인들이 대마초라는 걸을 자주 한다고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것보다 더한 마약도 얼마든지 있다고 알고 있었기에 원래 조금 예민한 사람이라는 이모부와 잘 살고 있고 이모부의 습관도 그냥 일반연예인들이 그러듯이 없어질 거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렇게 엄마도 나도 마음을 놓고 지낸 그 세월 동안 아이를 키우며 이모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이모부를 지키려 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고1때 본 이모는 이모부를 지킬 수 없었고 자신도 지키질 못했습니다.

   훗날 이모의 아픔이 어느 정도 가실 무렵에 대마초정도는 간단하게 정리될 거라 생각을 했다는 이모의 말에 난 혀를 찼습니다. 그때까지도 이모부가 원하지 않아서 그렇지 얼마나 간단한 일인 데라면서 헤어진 걸 차라리 잘한 거라고 이모를 다독였습니다. 혼자 식당일이며, 조그마한 장사며 하면서도 항상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이모부가 정신을 차리길 원하는 이모 때문에 결혼하기 전에 난 이모부를 찾아주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견딜 수 없다.

   이모부를 찾다 보니 전라도의 한 항구도시까지 가야했습니다. 이모부를 찾은 곳은 의외로 교회였습니다. 난 이모부가 목사님의 아들이었다는 걸 까먹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도 한때는 목회자의 길을 걷던 건실한 사람이라는 것 또한 기억에서 지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만난 이모부는 목사님은 되어 있지 못했지만 교회에서 이런 일 저런 일을 하면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모두 정리되어 혼자만의 삶을 살고있는 그는 이모와 사촌 동생에 대해 말을 하길 꺼려했습니다. 다시 지난 일들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견딜 수 없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미안하구나, 하지만 또다시 예전의 나를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아. 그렇다면 그들은 나를 또 마약쟁이라고만 생각할거거든. 둘 다 잘 지내고 있으면 그걸로 그만이지.”

   이모부는 그렇게 나에게 등을 보였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데, 고1이던 나는 이미 서른을 훌쩍 넘겼고, 이제 아무도그를 대마초나 피우던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텐데 자식이보고 싶지도 않나 하는 생각에 그가 너무 이기주의적이라고 이모한테 털어놓자“사람은 자기가 보는 게 단줄 알잖아, 나도 그랬거든 그가 목사님 아들이라고 해서 결혼을 결정한 것도 있고, 대마초를 안 피운다는 그의 말을 안 믿어준 적도 많았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서 싸우기도 많이 한 거 같기도 하고…”
  
   난 결혼을 했고, 이모부는 또 사라졌습니다. 정확히 사라졌다기보다 애써 우리가 만나려는 것을 포기했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입니다. 이모부가 대마초를 끊은 것은 내가 중 3정도 될 무렵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변의 누구도 그걸 믿어주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나마 경찰에 신고를 안 해준 게 그를 배려한 전부였다고 했습니다. 이모부는 자신이 결혼하는 것 자체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이모랑 결혼을 했고, 그 무렵이 본인에게는 신에 대한 정체성을 찾아 방황하고 있던 시기였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이 서지 않는 그런 상태에서 저질러진 것이 쉽게 정리되지 않은 것은 자신의 잘못이지만 나중에는 그 정리하지 못하고 지낸 세월 때문에 사람들의 오해 속에서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는 주위사람들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동경하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관대합니다. 그것도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경우에만. 하지만 막상 그것이 내 주변 내 이웃에서 일어나면 그리고 평범한 사람이 만들어 내는 일이라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세월이 변해도, 아무리 흘러도, 그 사람이 아무리 변해도, 그걸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머릿속에 각인을 시킵니다. 그 사람은 언제고 다시 예전의 일을 할 수 있는 잠재적 죄인으로. 이것이 이미 변한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그를 정말 잠재적 죄인이 아닌 진짜 죄인으로 혹은 다시 마약 사용자로 만든다는 것을. 그래서 이모부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살고 싶어 하고 과거와 헤어지고 싶어하는 이유인 것을. 아마 이모부도 이혼하고 친권을 포기했지만 이모와 아이가 그리울 것입니다. 하지만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나와 엄마, 친척들 때문이 아닐까요?

<2007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발간 수기집 "후회와 눈물 그래도 희망이2"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