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쾌락 뒤에 파멸 - 천용배

  • 조회수 4253

   마약이라는 것이 어떠하다는 것을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 몸으로 알고 당해 보았으면서도 최악의 상태가 되어서야 그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이렇게 글을 적는 것이 너무나도 수치스럽고 부끄럽지만, 모자란 내 삶에 대한 파멸의 이야기가 나처럼 되지 않도록 하는 것에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된다면 어떠한 부끄러움도 개의치 않고 적으려 합니다.

어려서 떠돌다.

   부모님의 사랑으로 세상에 나왔지만 그 사랑의 파행은 2살 때 바로 나타났다고 나를 길러주신 고모님께 들었습니다. 세상을 외롭게 시작하였으면 그 어떤 삶보다도 강하게 그리고 바르게 자랐어야 하는데, 그 어떤 방패막이도 없던 나의 소년시절에 찾아온 건 범죄와 약물이었습니다. 너무도 어린 10살 때, 소매치기란 나쁜 범죄를 배워서 동네 형들과 어울려 본드를 흡입하고 밖으로 떠돌았습니다. 그리고는 경찰에 잡히면 어린 나이 때문에 고모님께 인계되어 집으로 되돌아오고 하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14살 때 형들과 전문적으로 소매치기 생활을 하면서 필로폰이라는 것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제가 무엇을 알았겠습니까만 세상의 외로움을 잊어버리게 해주고 힘이 난다는 형들의 말에 파멸의 수순을 밟고 있었던 것입니다.

불효 그리고 구속되다.

   14살 때, 내 아버지는 서울에서 장사를 하셨습니다. 집을 나와 객지에 있었지만 그래도 고모에 대한 그리움에 전화를 하니,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중환자실에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서울에 있는 병원에 찾아갔었지만 아버지의 병수발도 들지 않고 도망치듯 병원에서 나왔습니다. 세상천하의 불효자식이지요. 대소변을 받아야 되는 아버지의 병환보다는 형들과 친구들이 더 좋았던 철부지 망나니였으니까요.

   그해 겨울, 소매치기를 하다 구속되었습니다. 이렇게 어리석은 자식도 자식이라고 그 편찮으신 몸으로 면회를 오신 모습을 보고 정신을 차렸어야 하는데 어린 나로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긴 한숨만 나옵니다. 그것이 천벌인지 지금의 현실입니다. 그러고 보니 마약전과가 지금과 7년 전의 전과 하나뿐인 것이 하나님이 주신 고마운 은혜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형벌이었습니다.

마약의 악순환은 계속 이어지다.

   가진 것을 탕진하고, 살림을 차리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여 전세금으로 마약을 할 때에는 저를 길러주신 고모님께서“죽기 전에 소원이 너 마약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하나님의 형벌은 너무나도 가혹하셨습니다. 징역 하는 동안 필로폰 속칭 히로뽕이라는 것을 만지는 사람을 많이 알게 되었고 그 인연이 끊이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졌습니다. 너무나도 어리석었습니다. 가지를 치듯 모든 것을 끊었어야 하는데….

   마약 알선, 그리고 투약으로 10월의 징역을 선고 받고 항소를 포기한 상태입니다. 자수와 다시금 알선 투약으로 몸에 기름을 뿌리고 자살까지 갔던 자해행위 등, 모든 것을 악몽으로만 느끼지 않고, 주변을 모두 잃고서야 탕자가 되어 이제야 사랑하는 사람의 품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마약에 대한 한마디.

   행여나 지금도 마약에서 고민하고 있는 분에게 딱 한마디 말씀만 드리고 싶습니다. 잠깐의 쾌락 뒤에는 너무나도 상대하기 힘든 외로움과 허탈감만이 되돌아온다고. 그리고 주변의 따스한 관심과 사랑만이 질기디 질긴 마약의 거미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007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발간 수기집 "후회와 눈물 그래도 희망이2"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