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생각이 나면 계속 내일로 미루다 - 최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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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을 끊는다고 생각하면 더 어렵기 때문에 생각이 나면 내일하자. 내일이 오면 또 내일로 하자 계속 미루게 되면 다짐이 되고 점점 생각이 없어졌습니다. 이것을 몸에 배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약 생각이 나지는 않습니다.

   훈련을 받으면서 사람은 일에 겁먹지 말고 부닥쳐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쉬운 것 같아도 부닥치면 어려운 것이 있고 어려운 것 같아도 쉬운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워도 포기하기 때문에 낙오자가 되는 것 입니다. 어려움은 또 닥치게 됩니다. 그것을 넘기지 못하면 영원히 넘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왕따를 당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년 정도 있다가 아버지도 사망하시면서 집안이 기울었습니다. 3형제 중 막내로 형들과는 나이차이가 있어, 큰 형은 입대할 때였습니다.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없다고 또래들이 많이 놀렸고 왕따를 당했습니다. 성격도 변했습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있다 보니까 점점 더 말을 잘 못하게 되고 대인기피증도 생겼고 공포증도 생겼으며 사람을 어려워했습니다.

   그래도 몇몇 친구들과 같이 어울렸습니다. 그들 중에 본드도 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담배를 처음 피웠고 고등학교 2학년 때 본드를 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는 호기심에 혼자 산에 올라가 했습니다.

혼자 본드하다.

   처음부터 주로 혼자서 했습니다. 성격 때문인지 같이 하다 보면 환각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싸움도 많았습니다. 본드를 하다 보면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어디에 둔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옆에서 하는 아이의 것을 뺐다보니 싸움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나도 몇 번 싸웠습니다. 한번은 방에서 여럿이서 하는 상태에서 한 친구가 부엌에서 칼을 들고 돌아다니는 경험을 겪으면서 사람을 죽여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혼자하게 되었습니다.

   환상을 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어느 정도 경지가 되니 환상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한번 엄청난 무서움을 경험했습니다. 어느 날 하다가 내 모습이 납작해져 어디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은 깨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깨려고 해도 깨지 않았습니다. 엄청난 공포가 밀려왔습니다. ‘이제는 죽었구나. 다른 곳으로 가는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경험이 너무 무서워 한동안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또 생각이 나면서 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이런 무서움이 없어지면서 숲에서 하면 매우 멋있는 가본 적도 없는 세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하면서 중독의 길로 빠지다.

   그러다가 19살부터 한동안 하지 않았습니다. 방위생활 6개월이 남은 시점에서 고참이 되니 풀어지면서 시간이 가지 않았고 너무 지루했습니다. 본드 할 때 재미있었던 생각이 났습니다. 다시 손대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느 겨울날, 새벽까지 본드를 불다가 일찍 동대본부에 나왔습니다. 사복이 온통 본드가 묻어 있었습니다. 급한 마음에 난로의 석유를 묻혀가면서 본드를 떼고자 했습니다. 다 떼지 못한 채 조회시간을 맞이했습니다. 석유냄새가 많이 나서 결국 발각되었습니다. 고참으로써 창피하기도 했지만 군기교육대에 갈 각오를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부모도 없고, 동사무소 직원들과의 관계도 좋아서 그런지 동장께서 불쌍하게 여겨 선처해 주셨습니다. 그때 반성하고 다시 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미 몸에 인이 박혀서 그런지 더 몰래 하게 되었습니다.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외출증을 끊어서 했습니다.

   방위 소집이 해제된 다음 기술을 배우기 위해 한 공업사에 들어갔습니다. 일 끝나면 저녁 늦게까지 계속 본드를 했습니다. 생활이 되지 않았습니다. 출근도 잘 못하게 되자 그곳에서도 성실하지 않다고 보고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곳에서도 나와, 해외로 수출하는 중소기업에 들어갔습니다. 지금도 내 인생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입니다. 이 회사에서는 눈이오나 비가 오나 밖에서 일하였지만 일도 그렇게 어렵지 않았고 보수도 좋았으며 사장도 나를 잘 보아 신뢰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돈보다 본드가 더 좋았습니다. 결국 몇 개월 다니다가 나와서는 빈둥빈둥 놀면서 본드를 하였습니다.

악순환이 계속되다.

   주로 혼자 한적한 곳에서 했었습니다. 아파트 뒤의 한 야산에서 하다가 누군가의 신고로 걸렸습니다. 초범이어서 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작은형 집에서 나와 큰형 집으로 갔습니다. 결국 거기서도 다시 하다 잡혀, 1년8월의 징역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잡히면, 시중에서도 판매하는 것인데, 망가지는 것도 나고 스스로 결정하는 것인데 왜 처벌하는가 하는 생각에 억울해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다시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교도소 안에서는 본드 생각만 났습니다. 특히 나갈 쯤 되면 유혹이 강하게 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은밀하게 할까 계획을 짜기도 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나와서 보름 만에 잡혀간 적도 있었습니다. 계속 하다가 잡혀 징역을 살고 하면서 20대와 30대를 보냈습니다. 결국 작은형과는 의절하게 되었습니다. 잡히면 큰 형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교도소에서 나오면 큰형 집으로만 갔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큰형과도 말다툼하였습니다. 큰형은 이제 더 이상‘너는 내 동생이 아니다’라고 하는 충격적인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헤어진 후 큰형과 1년 동안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사회에서는 일용직을 해서 돈이 좀 생기면 그 돈이 떨어질 때 까지 본드를 했고.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어 돈이 떨어질 때 까지 일을 하지 않으면서 불었습니다. 하루에 보통 2통 정도 하였습니다. 한통을 하면 3-4시간 정도 갔습니다. 식사도 못 하고 몸에 축 쳐질 때까지 했습니다. 늘 눈의 동공이 풀려 지냈습니다. 몸무게도 10kg정도 쭉 빠졌습니다. 일보다는 어떻게 본드를 할까 하는 생각만 했습니다.

   같이 했던 친구들은 어느 정도 되자 더 이상 하지 않았고 결국 나 혼자만 계속 하게 되어 그들과의 관계도 점점 멀어져갔습니다.

   처음에는 숨어서 하다가 취하면 거리로 나와서 하게 되었습니다. 취하면 대담해져 사람이 있으나 없으나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걸리면 다시 교도소에 들어가곤 하였습니다.

단약을 결심하다.

   나는 또다시 구속되어 이번에는 처음 치료감호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큰형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나는 형이 싫은 소리를 할 줄 예상하였으나 반겨주었습니다. 치료받고 형에게 다시 오라고 하였습니다.

   치료감호소에서 4개월 있으면서 송천재활센터의 홍보물을 보고는 도움이 될 것 같아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단약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확고하지 않았습니다.

   치료감호소 생활을 마치고 교도소에 갔습니다. 교도소에서 생활하다보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친해지는데 나의 죄명이 유해화학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나를 외면하곤 하였습니다. 입방할 때에도 인사를 해도 본체만체 했습니다. 유해화학은 잡범 방에 들어가는데 사람 취급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어린 사람들한테도 놀림을 당했습니다. 교도소에서 수많은 창피를 당했습니다. 나이 40이 넘어서도 유해화학을 달고 다니는 것이 창피하다고 스스로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외면하고 놀리니 더욱 부끄러웠습니다. 이제 끊어야겠다고 각오를 했습니다.

   출소한 다음, 큰형을 찾아가니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갱생보호소와 송천재활센터를 생각하고 망설였습니다. 이제 더 이상 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송천으로 갔습니다. 그 당시에는 재활센터에서는 교육도 없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곳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재활센터에서 회복하다.

   재활센터의 생활이 1주일 정도 지나자 마음이 편안해졌고 생활도 순조롭게 되었습니다. 내 마음의 안정과 평안을 위해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어느 날부터 안정되면서 과거를 매우 후회하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습니다. 예전에는 자주 잠에서 깨고 놀라고 했습니다만 점점 안정을 찾았습니다.

   오랫동안 본드를 해서 그런지 현기증이 많이 났었습니다. 교도소에서도 송천재활센터 초기단계에서도 앞이 안보이고 쓰러질 정도로 심하였습니다. 특히 여름에는 더위를 먹었습니다. 기억을 못하고 정신을 잃을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교도소에서 사람들이 미쳤다고 까지 했었습니다. 몸이 너무 아팠습니다. 치료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규칙적으로 생활하다보니 식사를 잘하고 몸도 좋아졌습니다. 현기증은 많이 나았습니다. 그러나 많이 떨어진 기억력은 잘 회복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좀 서럽습니다.

   또 대인기피증이 너무 심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말을 못했습니다. 심하게 떨었고 더듬었으며 두서가 없었습니다. 그런 내가 교육과 모임에서 계속 말하게 되고 발표하다 보니 지금은 다른 사람이 내가 대인기피증이 심했던 것을 알지 못할 정도로 좋아졌습니다.

목표와 기쁨

   지금은 현실에 충실하고 직업재활교육을 열심히 받아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을 인생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합니다. 내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더 열심히 달려갈 생각입니다.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직업재활훈련과정에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면서 보람도 느끼고 기쁨도 가져봅니다. 그러나 약물로 인해 기억력이 감퇴되고 훈련을 잘 따르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서럽기도 합니다. 시행착오도 하지만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많은 능력의 한계를 느끼지만 계속 노력할 계획입니다. 그러나 직업재활교육을 받으면서 힘든 것은 일보다는 단체 생활이다 보니까 끝나면 회식 등도 있어 술을 한잔해야 되는데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술을 먹게 되면 다시 약물 쪽으로 빠질 가능성이 있어 적극 삼가고 있습니다. 직업재활교육장에서 함께 훈련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술을 못 먹는 것으로 심어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2007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발간 수기집 "후회와 눈물 그래도 희망이2"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