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 어제보다 오늘 더 행복해 지기 - 홍석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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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약을 처음 체험했던 동기와 중독되어가는 과정, 그리고 마약으로 인해 불행하게 살아온 지난날을 뼈저리게 후회하며 마약단절의 의지와 각오를, 또 나와 같은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글을 처음 쓰고 배움이 부족하여 미흡한 글이지만 저의 메시지만은 꼭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처음 마약을 경험했던 시간으로 돌아갑니다.

   1980년대 후반 기지촌의 뒷골목, 화려한 네온사인, 시끌벅적한 미군들이 길을 가득 메우고 한쪽에선 스콜피온스(Scorpions), 퀸(Queen).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음악이 흐릅니다. 또 다른 쪽 골목에선 흑인들의 검은 음악에 리듬을 타고 랩과 소울의 힙합음악이 흐르고 있습니다. 나는 그당시 고등학교 축구부 선수로, 운동이 끝나면 선배들을 따라 기지촌 뒷골목을 가곤 했습니다. 패싸움도 많이 했고, 미군들과도 싸우곤 했습니다. 선배들은 􄤨􄤨여고 밴드부 누나들과 만나 조명이 돌아가는 클럽에서 춤을 추고 술을 마시고 들국화의‘행진’을 소리 지르며 불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부터 나는 화려한 유흥문화에 젖어 한발 한발 어둠 속 터널로 빠져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통령배 고교축구 시합에서 􄤨􄤨공고에게 져 기합으로 빳다를 맞다가 선수들이 모두 학교를 뛰쳐나왔습니다. 그 길로 학교를 나왔습니다. 나는 선배가 일을 하는 클럽에 갔습니다. 운동선배였던 그는 내가 클럽 일을 하게 도와주었습니다. 몇 년 후 선배는 나이트 지배인을 하다가 나에게 지배인 자리를 물려주었고 하얀 스텔라 차도 주었습니다. 나이트와 룸살롱까지 보며 식구생활도 하게 되었습니다. 옛 추억을 생각하니 씁쓸해 집니다.

   지난 암흑 속에 천금같은 20년의 시간은 너무나 아깝게 흘렀고 허송세월하며 많은 것을 잃고 나서야 정말 소중한 것들을 깨닫게 되었으며 환경이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중요한가도 생각해봅니다. 그 시절 선배와의 시간들은 정말 재밌었습니다. 마약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그 시절 환경과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친구들이 나이트 앞을 지나가는 선배들을 보며“저 형들, 마약하잖아”라고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얘긴지 몰랐다가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같이 선배 자취방에 놀러갔습니다. 그 방에 아주 예쁜 누나가 란제리 차림으로 침대에 앉아 있었고 선배는 횡성수설 이상한 행동으로 무언가 감추고 정리하느라 분주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선배가 돈을 주면서 슈퍼에서 먹을 것 좀 사오라고 하여 친구와 밖으로 나왔습니다. 친구는 선배가 마약을 한 것 같다고 말했고 나는 호기심에 친구와 마약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우리는 선배에게 마약하지 않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선배가“한번 해볼래?”라며 권유하였습니다. 나는 무서웠지만 호기심에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선배는 우리를 모텔 방으로 데려 갔습니다. 그곳에도 예쁜 여자가 있었습니다. 선배는 안 아프게 해준다며 손을 내밀고 고개를 돌리라고 했습니다. 나는 무서웠습니다. 선배는 손으로 팔을 탁 쳤고, 따끔 하는 순간 바늘은 혈관을 찔렀고 메스암페타민이 처음으로 혈관을 타고 내 몸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짜릿한 쾌감으로 전기처럼 흥분되는 느낌이 점점 몸으로 퍼져 나가자 선배는 주사 바늘을 빼며 손을 들라고 했습니다. 나는 손을 높이 들었고 순간 머리가 삐쭉 서며 무언가 머리부터 온몸으로 쫙 퍼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순간 심장이 터질 것처럼 벅차오르며 쾌감으로 전율을 느꼈습니다. 너무 어지러워 방바닥에 누웠습니다. 방바닥이 갑자기 지하 20층으로 내려가듯 온몸이 내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선배는 진정하라며 숨을 크게 쉬라고 하였고 나는 좀 진정을 하고 일어났는데 몸이 종이처럼 가벼웠고 설렘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첫 경험이었습니다.

처음 그 순간은 굉장했습니다.

   그리고 선배는 히로뽕을 하면 성관계를 해야 제대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며 끌자, 나는 무엇에 홀린 듯 집장촌으로 따라갔습니다. 그곳에서 모델처럼 예쁜 여성과 마약을 하고 성관계를 하여 황홀한 쾌락의 오르가즘을 한없이 느꼈으며, 그 기쁨과 즐거움이 뇌리에 박혀서 잊히지 않았습니다. 그 때부터 히로뽕의 맛을 알게 된 나는 방황하며 떠돌게 되었고 지금까지 계속 마약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경험한 그와 같은 기분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그 시절 기지촌은 마약에 빠진 친구, 선배 및 후배가 모두 피라미드처럼 퍼져나갔고 시내에서 놀던 사람들은 모두 마약을 하고 있었습니다. 동네 모텔들은 마약하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그런 모습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게 떠오릅니다.

   나는 그때부터 마약에 빠져들었습니다. 르망 레이서를 타고 180km로 고속도로를 불이 나게 달렸고, 비행기로 출퇴근 하듯 부산, 대구를 다녔습니다. 상선들은 조직적으로 스포츠카와 핸드폰을 세 개씩 가지고 움직였고, 그들이 시키는 대로 뭐든 다 했습니다.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생활을 하며 그런 시험에 통과했습니다. 광안리 바다 앞 􄤨􄤨모텔, 해운대 􄤨􄤨호텔, 동 대구역 뒤 모텔, 강남의 호텔 등에서 마약딜러들과의 접선은 지금도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그 환락과 신기루 같은 화려함에 중독되어 갔습니다. 점점 깊숙이….

   여자고객이 기다리는 􄤨􄤨으로 올라와 만나기로 하였는데, 모 모텔로 오라고 했습니다. 그곳으로 갔더니 예전 축구코치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그 코치는 나에게 방도 잡아주고, 생활비도 주었으며, 나를 도운 다며 알선하곤 했던 형이었습니다. 그 형은 나에게“지금 어디 있냐?”고 계속 물었습니다. 􄤨􄤨모텔에서 손님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마지못해 대답하였습니다. 얼마 후 갑자기“임검입니다”하며 문을 두드렸습니다. 여자고객이 순간“누구세요?”하며 문을 열어 줬고, 검찰과 몸싸움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여자고객은 5층 창문을 통해 물통을 잡고 도망가고 나는 구속되고 말았습니다. 그때 처음 8시뉴스에 북한산 히로뽕이라며 얼굴이 나왔고, 실형을 살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생활도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구속되어 많이 반성하였으며, 출소한 다음 착한 아내를 만나 한 가정을 꾸렸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면서 과일, 꽃게 등 닥치는 대로 팔았고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아내는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친구들과 다시 만나 회포를 풀곤 하던 중에 친구들이 마약을 권했습니다. 즐겁게 놀던 분위기 때문에 마음이 흔들렸고 결국 유혹하는 마약을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또 그 쾌락의 늪으로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안마시술소, 스포츠 마사지, 룸살롱, 나이트 등 온갖 곳을 돌아다니면서 돈을 뿌리며 마약에 빠져 들었습니다.

   15일 동안 잠도 자지 않고 룸살롱을 일주일동안 일곱 번 간 사실이 믿어집니까? 아내는 출산을 위해 홀로 산부인과에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런 가족을 생각하지도 않은 채 욕망과 탐욕에 눈이 멀어 이기적인 자신의 쾌락을 위해 방탕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점점 더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고, 내 몸과 정신은 마약에 젖어 정상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망가져가며 사랑하는 가족들의 눈을 똑바로 볼 수 없었고 미안한 마음에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돌았습니다.

   많은 유원지를 돌아다니며 점점 나 자신을 포기하며 미쳐갔습니다. 잊지 못할 황홀한 순간들만을 계속 원했기에 딸아이 백일과 돌잔치 때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아빠로서 떳떳하지 못한 내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러웠고 더 망가져만 갔습니다.

   그런 나에게 장모님과 처가 식구들은 이혼하라고 하였고, 착한 아내는 죽으려고 손목을 긋고 샴푸를 마시는 등 난리가 났습니다. 처가에선 감당을 못해서인지 나도 모르게 아내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고 나의 어머니는 충격을 받고 쓰러지며 머리가 깨져 뇌졸중에 반신마비가 오셔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나 때문에 온 가족이 불행해졌습니다. 이런 현실이 너무 원망스러웠습니다. 삶을 포기하려고 교통사고를 3번이나 냈는데 3번 다 차가 박살났지만 목숨은 붙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처가 식구들은 다시 기회를 주셨고, 열심히 살기 위해 장사하고 있는데 누가 정보를 주었는지, 검찰 직원들이 찾아와 또 다시 구속되게 되었습니다.

참회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이렇게 반복되는 마약의 굴레를 진정으로 벗어버리고 마음을 다잡기로 다짐하며 피눈물로 참회하고 반성하는 자세로 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습니다. 나 하나 때문에 주위 모든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마약을 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후회를 시작하는 동시에 불안과 걱정으로 자포자기 상태로 중독되어 가는 그 초라하고 불행한 순간들에 환멸을 느끼며 지나온 어두운 시간들을 깊이 뉘우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매일 그 동안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명상을 통해 나로 인해 고통 받고 피해 입은 가족과 모든 지인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있습니다. 한 평생 못난 아들 때문에 속만 썩으시다 병석에 계신 어머니와 태어나서부터 지금껏 사랑받지 못한 불쌍한 내 딸, 끝까지 고생하면서도 나를 버리지 않은 아내에게 석고대죄 하는 마음으로 용서를 빌고 있습니다.

   마약으로 인해 C형 간염, 지방간 및 고지혈증 등 많은 병을 얻었습니다. 이제는 술도 먹지 못합니다. 간이 굳는다고 음식도 가려 먹어야 하고 담배도 끊어야 합니다. 병을 앓으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살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작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건강하고 좋은 마음으로 가족들을 위해 좋은 가장이 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가족들을 위해 죄를 용서받으며 사랑과 배려로 어머니께 감동을 주고 싶고, 딸아이가 학교에 잘 다니도록 돕고 싶어졌습니다. 또 다시 나와 같은 삶을 살지 않도록 내 자신의 변화가 절실히 필요해졌습니다. 가족들이 건강하고 좋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싶은 간절한 목표가 생겼습니다.

   세상엔 나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장애인들도 있고, 아프리카와 북한, 이라크 난민 등 굶주린 사람들도 있는데, 최첨단의 좋은 나라에서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도 만들 수 있고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경각심을 일깨우며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성실하고 올바르게 살아가야 하는 분명한 이유를 다짐합니다.

   의무와 책임을 망각하고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생의 소중한 천금 같은 시간을 가족과 떨어져 후회하는 사람들이 없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나는 독이 묻은 화살을 빼내는 심정으로 마약 단절의 각오를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살아 숨 쉬는 것에 감사하고 좋은 책을 볼 수 있어 기쁩니다.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며 사랑하는 가족에게 이 마음을 편지로 전하는 것도 행복합니다. 그 많은 죄를 지은 내가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은 참회와 용서임을 날마다 새롭게 배울 수 있어 감사합니다.

   배움이 짧아 부족한 글이지만 용기를 내어 썼습니다. 지금도 마약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진정 가치 있는 삶을 되찾고 행복한 마음을 만들어, 스스로 행복한 길을 걸어갈 수 있길 바랍니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행복해 지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족도 어제보다는 오늘 더 행복해질 겁니다. 감사합니다.

 
 
<2007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발간 수기집 "후회와 눈물 그래도 희망이2"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