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로 반평생을 잃었습니다 -박 철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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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이제 서른. 하지만, 그중 절반을 약물에 빠져있거나 약물로 인하여 교정시설에서 보냈습니다. 약물을 하다 보니 친구도 모두 떠났습니다.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약물의 유혹은 수 없이 찾아왔지만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 몰랐습니다. 계속 약물의 함정에 더 깊이 빠져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모의 무관심, 그리고 가출과 약물.
할머니도 계시고 아버지가 사업을 하여 경제적으로도 그렇게 어렵지 않은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어머니로부터 동생과는 차별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관심조차 받은 적이 없었다는 표현이 적당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모님에게 무언가를 하고자 요청하면 “무조건 안 돼.”라는 반응뿐이었습니다. 밖으로만 돌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부에 대한 관심은 없어지고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내가 약물을 처음 시작한 것은 15살 때였습니다. 나는 학생이었고, 알던 친구는 가출한 상태였습니다. 그 친구와 어울려 다녔습니다. 우연히 그 친구가 본드를 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호기심으로 그 친구로부터 배워 함께 사용해보았습니다. 몸이 둥둥 떠서 하늘로 날아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후 그 친구와 만나면 빈집 등 본드를 할 수 있는 집을 찾아 불었습니다. 나는 처음 시작부터 나빴다는 기억이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교도소에서 보내다.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본드, 가스, 니스까지 다 해보았습니다. 친구들과도 했지만 혼자서도 했습니다. 부모님은 몰랐습니다. 동생은 내가 하는 모습을 본 적은 있지만, 무엇인지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16살 때 경찰에 잡혔다가 훈방조치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계속 했습니다. 결국 17살 때 다시 잡혀 소년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소년원에서 약물을 하는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약물의 좋은 얘기만 했습니다. 나도 당연히 나쁘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본드를 불기시작하면서부터 경찰서, 소년원, 소년교도소, 성인교도소, 치료감호소 이렇게 교정시설을 전전했습니다. 교정시설에서 출소하면 어떤 때는 1개월도 버티지 못하고 다시 하다가 잡혀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전과가 많아 지다보니 사회에서 보내는 시간은 적었고 대부분을 교도소에서 보냈습니다. 교도소에서 출소하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다시 하게 되고 결국 또 교도소에 가고 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습니다.
20대 중반이 되자, 사회생활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아는 분의 도움으로 옷을 판매하는 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몸이 크고 건강한 편이라 열심히 생활했습니다. 하루하루가 너무 바빠 약물을 할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상사와의 갈등은 계속 깊어져갔습니다. 사회생활의 경험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몇 개월 후 결국 이 일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많아지자 다시 약물 생각이 났습니다. 바로 약물에 빠져들었습니다.

10대에 정지된 것 같은 나.
약물을 많이 할 때는 하루에 한 박스 10개를 다 하곤 했습니다. 보통 1주일 정도 계속 하다가 한동안은 하지 않다가 다시 하는 그런 패턴으로 했습니다. 아직도 젊어서인지 몸의 폐해를 인식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공부할 때 공부도 못하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나는 15살 시점에 정지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부족한 것이 너무 많다고 느끼지만 어떻게 이를 극복할지 모르겠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처지라 인생을 어떻게 설계할지 난감하기도 합니다.
사실 저는 약물을 사용하던 초기부터 최근까지도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남의 돈을 갈취하거나 상해를 입힌 적이 없습니다. 절도나 상해를 입혀서 처벌을 받았다면 억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단지 약물을 해서 구속되고 형을 살게 되는 것에 매우 큰 불만을 가졌습니다.
또한 약물을 하면서 어머니의 신고로 형을 산 적도 있습니다. 어머니의 관심도 받아본 적 없는데 신고로 형까지 살게 되니 어머니에 대한 불만은 폭발 지경이었습니다. 사회에 대한 불만과 어머니와의 갈등이 증폭되어 자살충동도 많이 느꼈습니다. 나에게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깨끗이 지우고 다시 시작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불만과 갈등으로 꽉 차 있던 나는 사회에 나와 생활하면서 수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직면하면 바로 스스로를 포기하고는 약물로 위안을 삼곤했습니다. 계속 악순환이었습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일정시간 단약을 유지하다가도 다시 약물을 하는 생활로 되돌아가곤 했습니다.

회복의 싹이 트다.
그렇지만 영영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도 마음 한 구석에서 자랐습니다. 지난 7월, 난생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내가 약물로 너무 힘들다고 고백했습니다. 내가 살 길을 찾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부모님과 동생은 인터넷을 통해 송천재활센터와 연락을 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송천재활센터에 오면서도 저는 교도소에서처럼 시간이 지나면 되겠지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마약류 및 약물로부터 회복을 위해 자발적으로 찾아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회복을 위한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교육도 받고, 함께 생활하는 입소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저는 알게 모르게 약물 및 사회에 대한 태도와 인식이 변해갔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엄청나게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한 내 자신이 과거에만 얽매여 악순환의 그 현상이 되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약물중독자는 완전한 치료가 없다고 합니다. 평생을 단약과 회복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합니다. 단약을 유지하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단약을 처음하면서부터 3일, 1주일, 1개월, 6개월, 1년, 1년6개월, 2년 이런 식으로 약물의 유혹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이곳 송천재활센터에서는 속마음을 계속 나누도록 하고 있습니다. 계속 대화하도록 하며, 잘못된 행동에는 동료 입소자들이 호되게 지적하여 바로 잡도록 하고, 자신의 회복에 대해 집중하도록 하고 말을 하도록 하며, 다른 입소자들은 이를 경청하는 환경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우리 입소자들은 비슷한 처지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나누고 서로 격려하고 지지하면서 약물에서 벗어나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몇 개월 하다보면, 약물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자만심이 고개를 다시 들어 재발한 사람도 종종 있습니다만, 저에게는 그런 사람들도 좋은 스승이며 훌륭한 가르침을 줍니다. 재발한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생각하면서 제 자신에게도 큰 경각심이 생기게 됩니다. 또한 이제야 저로 말미암아 부모님의 그늘진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 때문에 부모님들이 가슴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셨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약물 하나로 제 15년 인생이 없었고, 악몽이었다니 정말로 얼마나 어리석고 한심하였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행동에 많은 후회를 했습니다.
제가 송천재활센터에서와 같은 교육을 조금만 빨리 받았더라면 이렇게 긴 시간을 약물과 교도소에 빼앗기지 않았을 것 같은 생각이 나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