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평생을 안고 가야할 질병 -오 명 필

  • 조회수 4212
저는 40대 중반의 대한민국 중년남성입니다. 
사회적으로 볼 때 제 나이 정도면 한 가정을 이루고, 자라나는 자녀들을 보며 작은 기쁨도 누리고, 불어나는 또는 줄어드는 통장잔고에 고민도 하는 그런 삶이 아마도 제 또래의 남성들이 누리는 가장 평균적인 삶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 평범한 삶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저의 입장에서 체험 수기는 새로운 각오와 남들보다는 많이 늦었지만, 약물의존자라는 굴레(drug intoxication)에서 벗어나 다시 한 번 인생을 재정비하고 생각하며, 새 출발을 다짐하는 그런 시간인 것 같습니다.
저는 제 병(Disease)을 이해 해보려고 검정고시를 거쳐 원광디지털대학교 약물재활복지학과에 입학하여 마약(약물)을 전공한지도 어느 듯 4년이 되갑니다. 대학에서 약물에 관한 지식을 배우고 익혀 많은 의존자에게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용기 내어 수기를 작성합니다.

오랜 약물생활, 소중한 많은 것을 잃다.
마약으로 구속 수감된 적은 7회이고, 그로 인해 교정시설에서 사회와 격리된 생활도 10여년 정도 되는 듯합니다. 한창 투약하던 80년대 그리고 90년대만 해도 마약에 대한 치료나 예방 시스템이나 또한 그에 관한 도움을 받을만한 기관이 거의 없었으므로 감히 끊어본다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대개의 경우가 그렇듯이 호기심으로 쉽게 접근했다가 쾌락에 익숙해진 다음에는 정말 빠져 나오기가 힘들었습니다.
그 22~3여년의 세월 속에서 저한테는 정말 소중하고 가슴 아픈 많은 것들을 잃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제가 구속된 소식을 듣고 그 충격을 받아 뇌졸중으로 쓰러져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님은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또한, 사랑하던 아내와 아들도 혹독한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때 장사도 하고 일도 하여 그런대로 윤택한 생활을 누린 적도 있었으나 약으로, 도박으로 탕진하여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졌습니다. 지속된 투약은 몸을 지치게 하고, 망가지게 하였으며, 신경쇠약으로 인한 정신이상, 파탄에서 오는 불안, 우울증, 대인기피 증세마저 생겼습니다. 정말 지금 생각하기에도 혼란스럽고 힘들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더구나 이런 질병(Disease)들이 한꺼번에 겹쳐서 다가오니 혼자 힘으로는 감당이 안 되어 국립부곡병원에서 약1년 6개월 정도 치료를 받았습니다. 

회복하기 위해 약물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다.
처음에는 단약만 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릴 줄 알았는데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았습니다. 낮과 밤이 바뀐 생활습관이 그랬고, 약물에 대한 갈망(craving)이 아직도 남아있어 주위의 유혹에도 무방비상태였으며, 사회에 나가서는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병원의 도움으로 단약 2년차로 접어들면서 신체적으로는 많이 호전되었지만 마음속에 마약에 대한 갈망(craving)은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있었습니다. 약물의존자에게 있어서 재활이란 신체적, 정신적, 직업적 잠재능력을 최대한으로 회복시켜 충분한 생활을 영위하도록 해주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동안 익숙했던 중독적인 삶 전체를 변화코자(다 학제간의 접근이 필요한 과정인지라...) 여러 방법을 생각하던 중 저에게 가장 단약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약물분야에 대한 공부라 생각하고 목표를 세워 개입 접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가장 큰 문제는 다년간의 약물사용으로 인식이 흐려지고, 저와 외부세계에 대해 왜곡된 신념! 생활에 필요한 사회기술이 부족했던 거 같습니다.
또한, 현실적으로 고등학교 중퇴인지라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고, 어느덧 세월이 지나 2010년 8월이면 학위를 받고 대학원에 진학합니다. 공부와 일을 병행하던 중 2008년 1월에 KNAADAC(Korea National Association of Alcoholism and Drug Abuse Counselors)에서 주관하는 제1회 자격시험이 있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권위 있는 알코올과 약물의존자들을 위한 가장 큰 상담가협회인 NAADAC에서 주관하는 국제자격증 시험이었습니다.
 이 시험에 도전하였고,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영어도 너무 부족했고, 이해가 될 때까지 두 번 세 번을 반복하여 학습하였습니다. 그리고 시험을 보게 되었고, 믿어지지 않게도 합격하여 라이센스를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결코 쉬운 시험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는데, 운이 많이 따라 준 것 같습니다. 학교 입학 자체가 저한테는 크나큰 동기부여(motivation)가 됐지만 시험합격으로 인해 더욱 격려도 되었고 구체적인 꿈(Vision)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바로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취득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약물에 지친 의존자를 저 자신이라 생각하고, 돕고, 개입(Intake)하려면 복지 분야에 대한 전반적인 서비스와 이론도 필요하고 중요할 듯합니다. 이어 대학을 졸업하면 곧바로 대학원에서 마약학 석/박사 과정을 밟을 예정입니다. 힘든 과정이라 생각되지만 제가 마지막 생명을 불태우기까지 꼭 해야 될 일이기에 신념과 자신 또한 굳건하게 이어 갈 것입니다.

 누구나 젊음을 예찬하고 ‘다시 청춘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고 아쉬움도 토로하지만 그 귀중한 세월을 전 정말 뒤돌아보고 싶지도 않게 불행하게 보낸 것 같습니다. 마약중독자라 하면 아직까지 우리사회에서는 그저 사회의 낙오자요 범죄자일 뿐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회복시키기 위해 강한 신념을 가지고 송천재활센터를 만들고 운영하는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학업이 잘 진행되도록 애증적인 사랑으로 돌봐주신 약물재활복지학과 학과장께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또한 의존자 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신 국립부곡병원장과 의료부장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마약류퇴치운동에 헌신하고자 합니다.
 아직까지도 제 자신이 병원에서 치료단계를 거쳐 치료공동체(TC) 단계이지만 앞으로 이 분야에서 작은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마약의 결론은 ‘파멸과 죽음’이라는 것을 수많은 의존자와 사회에 알리고, 경고하고, 예방하는 일들로 남은 인생을 채워나가고 싶습니다.
 한 개인, 한 가정, 그리고 사회와 국가의 근간까지도 흔들 수 있는 마약의 파급력은 그야말로 무서운 것이며, 한 개인의 인격과 건강을 가장 정교하고 완벽하게 파괴하는 물질이야말로 바로 이 ‘마약’ 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독(의존)에 대한 갈망은 절대 혼자선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므로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저 역시 제 자신의 과거는 용서하되 결코 잊지는 않을 것입니다. 중독은 우리가 평생을 안고가야 하는 질병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