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은 내 모든 것을 삼켰다 -임 정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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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접한 것이 지금도 나를 괴롭히고
내가 맨 처음 본드를 접하게 된 것은 고2 가을이었다.
평범한 학생들이었던 친한 친구 몇 명이 호기심으로 다른 곳에서 본드를 부는 방법을 배우고 왔다. 그 친구들이 다른 친구들과 함께 본드를 흡입할 테니 망을 봐 달라는 것이었다. 난 수락을 하였고 그 후 몇 번이나 망을 봐 주었다.
망을 보면서 본드를 흡입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도 “이게 무엇이 길래 하는 걸까?” 하는 호기심에 접한 것이 지금까지도 악연이 되어 나를 괴롭히고 있다.
처음 본드를 했을 때 몽롱한 기분으로 좋았지만 그 후 2-3시간 정도 두통에 시달려 다시는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과 동질감을 형성하기 위하여 몇 번 하다 보니 두통이 사라지고 본드를 흡입하는 게 점차 묘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일탈에 따른 스릴이랄까 하는 느낌도 있었고, 스트레스도 사라지는 것 같았고, 재미있었다. 어째든 나와는 잘 맞는 그런 느낌이었다. 친구들과는 어울려 한 달에 3-4번 가볍게 했다. 그 후 군에 갈 때까지 계속 흡입했다.
난 다른 이와는 다르게 본드를 흡입하면서도 공부를 계속 했고 대학에도 진학 하였으니 내가 잘 조절하면서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본드를 하면서도 러미나라는 약물도 하곤 하였다.
제대를 한 다음, 바로 대학에 복학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은행에서 계약직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1년씩 계약을 연장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직장의 일이 만족스러웠고, 몇 년 만 더 있으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말도 들었다. 그러나 세상에서 스트레스가 없는 일이 없는 것처럼 직장도 쉽지 않았다. 나는 스트레스를 본드로 풀었고 이것이 습관화되었다.
나는 술 대신 본드를 하는 것이 편했다. 술은 나를 어지럽게 했지만 본드는 단지 몽롱하게 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한 달에 3-4번 가볍게 하는 것이 어느덧 1주에 2-3번 정도 사용하는 단계까지 진행되었다.

약물로 직장에서 해고되다.
직장을 다니던 초기에는 계속 사용했어도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운동도 열심히 했고 아주 건강한 편이어서 몸에서 어떤 문제도 느낄 수 없었고 회사문제도 없었다.
하지만 본드를 흡입한지 4,5년이 지나자 나에게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쉽게 지쳤고 정신적 피로감을 느꼈다. 여가생활을 갖지 못할 정도까지 되었다. 성격도 많이 거칠어지고, 별 것도 아닌 것에도 쉽게 짜증이 나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부지런하던 내 모습이 이상한 상태로 변해갔고 눈의 생기도 잃게 되었다. 그리고 집에서는 이전부터 의심은 하고 있었지만 말은 하지 않다고 변한 내 모습을 보고는 알게 되었고, 이후 계속 가족들과의 갈등이 심해졌다.
그래도 무엇인가가 잘못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었지만 끊지 못하고 계속 혼자서 했다. 그 즈음, 한강유원지에서 혼자 본드를 흡입하다가 시민들의 신고로 경찰에 넘어가게 되었다. 법원에서 벌금형을 받았지만 본드를 끊기 위한 노력은 별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결국 직장에서도 해고되었다.

단약노력도 실패, 병원과 교도소를 전전하다.
그렇지만 난 젊은 20대 초반의 나이니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단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하여 잘 아는 스님에게 부탁하여 절에서 한 달하고도 보름 정도 머물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때에도 본드를 끊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정말 지금 생각해보면 무언가에 홀린 것 같았다. 절에서 나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본드를 흡입하다가 다시 신고로 경찰서에 가고 구치소에 가게 되었다.
구치소에 있으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본드를 끊기로 결심하였다. 구치소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나오자마자 기도원에 들어가 하나님께 매달리면서 본드를 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기도원에서 나오자마자 본드를 다시 흡입하게 되면서 나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가족들과 상의하여 중곡동에 있는 국립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알코올중독자, 도박중독자, 그리고 나와는 다른 약물을 한 약물중독자들과 생활하면서 내가 본드에 중독이 되었다는 것을 시인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 때 내 나이 23살이었다.
하지만 병원에서 퇴원한 후에도 나는 끊임없이 본드를 흡입하였고 그러다가 다시 경찰서에 구속되어 실형을 받고 교도소에서 생활을 하다 나왔다. 이번에는 정말 본드를 끊고 열심히 살려고 했다. 하지만 정말 무언가에 홀린 것인지 정상적으로 생활을 하다가도 한두 달이 안 되어 꼭 본드를 주기적으로 흡입하게 되었다. 점차 가족들과의 관계도 나빠지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졌다. 여차친구도 있었지만 나 스스로 자격이 안 된다는 생각에 이별을 했다.

약물로 내 인생이 망가져 가는데 난 속수무책이었다.
점차 본드를 끊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심해져 정상적인 생활도 어려워졌다. 모든 것이 재미가 없고 의미가 없어졌다. 집에서도 아무런 말도 안 하고 나 스스로 고립된 생활을 하였다. 점차 우울해지고 유일한 낙이 본드를 흡입하면서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만이 스트레스를 푸는 길이 되었다. 병원에서는 심한 우울증이라는 병명을 받고 약을 먹었지만 나아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지내다가 다시 신고로 실형을 받고 교도소에서 생활을 했다. 난 정말 쓸모없는 놈이라는 생각이 심하게 들었고 무슨 일을 열심히 하려는 생각보다는 그냥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병원에 입원을 해 11개월이나 시간을 보냈지만 그 때뿐이고 본드흡입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정말 우스웠다. 마약도 아닌 본드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져 가는데 난 속수무책이었다. 내가 이렇게 나약한 녀석이라는 것도 이 때 알았다.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했다. 자살도 몇 번 시도했지만 불발로 끝나고 더 우울해졌다.
나는 지금도 생활을 잘 하다가 갑자기 발병하는 습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본드로 우울증의 증세가 있는 나는 말을 하기보다는 참고 참는 성격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억누르고 있다가 어느 순간 본드가 나쁘고 위험하다는 생각을 갑자기 잊어버린다. 그러자마자 바로 본드만 생각나게 된다. 좋아했던 본드, 하고 싶다는 상상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본드가 내 입에 닿아있다. 이런 모습을 인식하게 된 나는 바로 후회하게 되고 잘못했다는 죄책감에 근심하게 된다. 우울증도 심해지고 문제가 더욱 악화되는 길로 가게 되었다.

아직 내 미래가 투명한 것은 아니지만 회복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비록 실패할 수 있을지라도 다시 일어서서 회복의 길을 가고자 한다. 더욱더 노력하여 내 자신에 떳떳해지고 부모와 가족 모두에게도 인정받고 신뢰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