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약을 하면서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 -이 필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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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렇게 부럽다.
나는 교도소에 가는 것이 두렵다. 약물의 후유증 때문에 힘들다. 그렇지만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단약을 하면서 단 하루라도 평범하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비록 지금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살아났듯이 노력하면서 결혼도 하고 열심히 살고 싶다.

생존하느냐가 문제였다.
20년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9살 때 부모를 모두 여위고는 혼자가 되었다. 소년의 집에서 2년 정도 지낸 다음 그곳을 나와 12살 때부터 가출청소년이 되었다. 나는 죽지 않고 살아남으려고 배가 고파 빵을 훔쳐 먹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다른 가출청소년들을 만나 그들과 한 무리가 되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S정, 옥타리돔, 아나렉션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이런 약물들이 불법이 아니어서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었다.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했다. 신문을 팔기도 했고 돈을 훔치기도 했다. 약물을 먹고는 환각상태에서 돈을 훔쳤고, 훔친 돈으로 약도 사고 잠자리와 먹을 것을 구했다. 닥치는 대로 살았다. 불법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생존하느냐가 문제였을 뿐이다.
어떤 때는 아나렉션 2백 알을 먹고 환각상태에 빠져 돈을 훔친 적도 있다.
결국 약물을 한 상태에서 소매치기를 계속하다가 법적 처벌을 받아 소년원에 갔다. 소년원을 나와서는 또 다시 약물을 하고 소매치기를 하는 생활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대마초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본드나 가스는 하지 않았다.
이렇게 전과가 하나씩 늘어났고 죄가 늘어날수록 나에 대한 법의 형량도 늘어났다. 나라고 법의 무서움을 몰랐겠는가? 구치소나 교도소에서 배운 것이 뭐가 있었단 말인가? 어린 나이에 교도소에서 살아남으려고 얼마나 피눈물을 흘리며 값진 자유의 날을 기다리면서 살아왔는가. 하지만 막상 출소가 가까워지면 또 다시 알 수 없는 막연한 두려움이 몰려왔다.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걱정에 휩싸였다. 출소를 하면 현실은 그대로 다가왔다. 당장 돈이 없어서, 잘 곳이 없어서 춥고 배고픔에 길거리를 헤매게 되고, 교도소에서 듣고 보고 배운 것이라고는 범죄밖에는 없어서 살아남기 위해 소매치기를 했다. 소매치기를 하고자 하면 두려움과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약물을 하게 되었다.
출소하여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 가족이라도 있다면 다행이지만 가족이 없는 출소자들은 거리를 헤맨다. 갈 수 있는 곳도 없고 밥 한끼 먹을 돈조차 없다. 교도소가 무서워서 노숙자로 전락하거나 아니면 자포자기로 한탕주의로 돌변해서는 또다시 돈을 빼앗거나 상해를 입혀 다시 교도소로 가게 되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마약을 했던 사람은 교도소가 무섭고 심한 정신질환에 시달려 정신병원에 가고, 사회에서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쳐보지만 결국 이들도 교도소로 가게 된다.

사회보호법으로 억울하게 11년을 격리되어 보내다.
춥고 배고파서 저지른 범죄가 처벌이 가중되어 나중에는 사회보호법으로 인해 완전히 사회와 격리되어 살아가는 수인의 신세가 되었다. 억울하게 11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그 때를 회상해 본다.
수인으로써 경찰서 유치장에서 알 수 없는 참담한 어둠 속을 헤매고 있었다. 검찰 송치가 떨어졌다. 여러 명의 죄수들과 함께 굴비 엮이듯이 밧줄로 꽁꽁 묶였다. 손에는 차가운 쇠팔찌가 채워졌다. 쇠창살로 쳐진 호송차를 타고 경찰서를 떠났다. 저승사자들처럼 엄중한 경비를 받으면서 구타를 당했다. 이런 속에서 검사의 조사를 받고 저녁 늦게 다시 호송차를 타고 구치소 문을 들어섰다. 이때부터 끝을 알 수 없는 지옥이 펼쳐진다. 모든 인권이 사라진 또 다른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참담한 현실이 계속될 뿐이다. 많은 시간과 세월이 흘러갔다.
죄인으로 삶을 산다는 것은 너무나도 끔찍하다. 과연 누가 자유가 박탈당한 삶을 원할까? 올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무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죄의 짐을 지고서 수인의 신분으로서 겪는 현실은 암담할 뿐이다.
감옥에서의 삶이 너무나도 절망적이다 보니 찾게 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 밖에 없었다. 나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면서 ‘예수님 도와주세요. 지은 죄가 있다면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죄는 밉되 사람은 용서해 주십시오.’ 저절로 나오게 되는 기도소리다.
이렇게 힘든 나날 속에서 수형생활을 하던 중에 우연히 노 수녀님을 알게 되었다. 그 분을 믿음의 어머니로 모시고서 생활했다. 힘든 삶이었지만 그나마 인간이 내민 따뜻한 손길이었다. 깊은 믿음은 아니지만 신앙생활도 하게 되면서 마음이 잠깐이나마 안식을 얻기도 하였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주는 사랑이었지만, 내 자신이 살아온 지난날의 방탕했던 삶을 닦아주기에는 많은 시간들이 필요하였다.
20년이라는 세월을 하루아침에 뒤바꾸기에는 살아가면서 치러야할 고통의 대가가 많은 세월을 필요로 한다. 지금도 그런 세월을 살아가고 있다. 그 시간들을 메우는 첫 번째 생각은 내가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20년이라는 세월동안 소중한 자유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베풀어주신 수녀 어머님께 감사드리는 것이다.

재활 노력, 실패, 다시 노력 -----
11년의 교도소 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송천재활센터를 찾았다. 그곳에서 6개월 동안 생활을 했다. 퇴소한 다음 사회에서 열심히 배달 일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때 처음으로 필로폰을 접하게 되었다. 그렇게도 사회에서 살아보려고 노력도 하였지만 또 다시 마약이라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결국 6개월의 형을 살았다.
이때의 참담함으로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다. 어떻게 여기까지 살아남았는데 또다시 무너지나 하는 심한 자괴감에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수형생활을 하게 되었다. 차라리 죽고 싶었지만 죽을 용기는 없어서 사는 삶 속에서 기도를 하게 되었다.
‘다시 한 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열심히 살겠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주님께서 깨닫게 해주셨기에 아무런 조건 없이 내 장기를 다른 사람에게 주겠습니다.’ 이 첫 약속은 건강할 때 이루고 싶었다.
출소한 다음 사회에서 재기해 보고자 노력했지만 되지 않았다. 약물로 인한 후유증이 나를 괴롭혔다. 부곡병원에 입원하였다. 1년씩 재입원하는 형태로 3년 동안 입원치료를 받으면서 일을 하였다. 번 돈을 착실히 모아 1천만 원을 만들었다. 이 돈을 바탕으로 하여 사회에서 열심히 일하고 싶었다. 아는 사람이 뻥튀기 가게를 하면 좋을 것이라는 제안을 했다. 서울의 한 지역의 자리까지 내준다고 하였다. 이 돈으로 중고차도 사고 뻥튀기 장비도 구입하여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노점에서 하는 일 자체가 불법이었고, 자리도 없었다. 빼앗긴 장비를 찾으러 구청에 다니느라 장사도 못하고 힘만 들고 돈은 바람처럼 흩어졌다. 시작한지 1개월 만에 망했다. 정말로 허망했다.
약물 생각이 또 났다. 육신도 지쳤고, 영혼도 지쳤다.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할 수 없었다. 결국 약물로 인한 후유증인 우울증, 공황장애, 정신질환이 나를 덮쳤다. 더 이상 살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3번의 자살을 시도했다. 그러나 살라는 말씀인지 살아났다. 정말로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마약을 끊어서 사는 삶이 훨씬 소중하다.
비록 지금도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지 알 수 없는 막막한 현실이지만 남은 삶은 나보다 더 어려운 곳에 있는 이들에게 교도소라는 곳보다는 그래도 사회가 좋다는 것과 마약을 끊어서 사는 삶이 훨씬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리면서 살아가고 싶다.
다시 한 번만 나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기회를 튼튼한 전환점으로 삼아서 무너지지 않는 초석을 삼으리라 굳게 다져본다.
떳떳하게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나에게 기회를 주고 의미도 더욱더 크므로, 내가 받은 사랑을 아무런 조건 없이 나도 누군가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어려운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소중한 삶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렇기 위해서는 내 자신을 되돌아보고 허송세월로 보내지 않고, 부단히 노력하면서 생활하겠다고 굳게 내 자신에게 약속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