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류역사, 마약지칭어

마약류 역사

● 국내마약류의 역사
 

시대 주요 남용 약물 사회문제 관련법
일제점령기 이전 아편 아편 중독자 발생  
일제점령기 헤로인, 아편, 몰핀 마약 중독자 증가 조선아편취체령
1945년 헤로인, 아편 마약 중독자 증가 마약취체령
1950년대 아편
아편 중독자 증가
마약법
1960년대 아편, 메사돈
메사돈 중독자 발생 및 증가(메사돈 파동)
마약법
1970년대 대마초, 필로폰, LSD 젊은 층과 연예인들의 대마초 흡연 및 필로폰 밀조범 증가 습관성의약품관리법
대마관리법
1980년대 필로폰, 대마초, 본드 필로폰 중독자 증가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대마관리법
독물및극물에관한법률
1990년대 필로폰, 대마초, 부탄가스, 본드 신종 마약류 출현 및
부탄 가스, 본드 중독
자 증가
(필로폰 제조 근절)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대마관리법
유해화학물질관리법
2000년-현재 필로폰, 야바,엑스터시 신종 마약류 중독자
증가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법률통합)


해방이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유입되어 남용된 마약류는 아편으로서 그 사용이 시작된 시기는 구한말로 추정되며 당시 중국인 ‘양대인’이라는 자가 아편을 소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제점령기에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아편가격이 급등하자 함경도 등 산간지역에서 양귀비 비밀재배가 시작되었고 이에 조선총독부는 1912~1914년에 걸쳐 아편 단속법령을 공포하면서 아편재배 및 사용자에 대하여 단속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1919년에는 조선아편취체령을 공포하여 양귀비 재배지를 한정하고 아편은 총독부에서 전량 수거하여 군인들의 치료 목적 등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1925년도부터는 일본 정부 차원에서 아편 판매 정책을 감행, 국내 재배지를 확대하면서 국내 소요량의 30배에 달하는 아편을 생산, 이를 대만 ,만주 등지에 수출하였다.
 

1945년~1950년대

1945년 해방과 함께 만주 등지에서 귀환한 동포 중에서 아편에 중독된 자가 많았으나 당시 해방과 한국전쟁 속에서 정치행정기능의 약화와 사회질서의 교란 때문에 마약 생산 및 유통을 통제하는 정책이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및 의료시설 미비로 인하여 농촌지역에서의 양귀비 밀경작이 확산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아편중독자가 대폭 증가하여 큰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여 정부에서는 1957년 4.23. 마약법을 제정하여 양귀비 재배자 및 아편 사용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였으나 아편중독자는 오히려 증가하였다.
 

1960년대

5.16군사정부는 마약사범 근절을 위하여 1961년 특정범죄가중처벌에관한임시법에 마약사범에 대한 가중처벌을 두어 강력한 단속을 실시하였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1963년부터 합성 마약인 메사돈이 널리 남용되어 마약중독자 수는 오히려 증가하기 시작하여 1965년에는 마약중독자가 35,000여명에 달하기도 하였다. 정부는 마약퇴치를 하지 않게 되면 국가경제발전이 어렵다고 판단, 1965년부터 대대적으로 마약사범에 대한 집중 단속을 시작하여 1967년에 이르러서는 마약사범이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일본정부가 필로폰제조 단속을 강화하자 50년대말 60년대초부터 일본 야쿠자조직이 과거 일제시대 일본에 징용되어 필로폰제조에 종사했던 한국인 기술자들을 찾아내서 한국에서 필로폰을 제조하게 하고 이를 일본으로 밀수출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섬유용으로만 재배되던 대마가 월남전이 한창이던 1965년경부터 도취감을 일으킨다는 물질로 전파되어 대마담배 흡연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함과 동시에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던 기지촌을 중심으로 대마담배 흡연자들이 늘어나 점차 젊은이들 사이에서 사용자들이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단속법규가 없어 단속을 하지 못하였고, 1970. 8. 7. 습관성의약품관리법을 제정하여 단속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이미 대마초 흡연이 사회각계각층으로 전파되어 1975년경에는 대학가를 비롯한 연예계에서 대마초가 확산되기에 이르러 심각한 사회현상을 낳았다.

마침내 정부는 1976. 4. 7. 대마관리법을 제정하여 습관성의약품관리법에서 대마를 분리시켜 대마흡연자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전개(대마초파동)하여 대마흡연자 1,460명을 단속하는 등 단속을 강화하자 1980년부터는 대마초사범이 대폭 감소하였으며 한편, 국내 필로폰 밀제조량이 급증하기 시작하여 연간 수십kg미만이던 국내 압수량이 1975년도에는 104kg이나 압수되었다.
 

1980년대

1980년대 들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심각하게 대두된 약물은 메스암페타민(속칭 필로폰)이며 현재 우리나라에서 널리 남용되는 대표적인 불법 마약류가 되었다.

60년대와 70년대는 한국이 필로폰을 제조하여 일본 등지 수출하였으나 필로폰이 한국사회에서 남용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1970년대의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1980년대에서 유흥, 향락문화가 발전하게 되었고, 특히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을 거치면서 이와 같은 향락문화가 극에 달하였고 필로폰이 국내에 퍼지게 되었다.

또한, 80년도 등장한 제5공화국이 일본을 상대로 한 필로폰 밀반출에 대해 대대적인 단속을 실시하여 국내에서 제조된 필로폰의 일본 수출길이 막히자 이들이 제조한 필로폰이 자연히 국내시장에 유입되어 필로폰 중독자가 더욱 늘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내 필로폰 중독자가 급증하기 시작하자 정부는 그 심각성을 인식하여 1989년 대검찰청에 마약과를 신설하고 필로폰 제조조직에 대한 집중적 단속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89년부터 91년까지 3년간 국내의 거의 모든 필로폰 제조기술자를 검거하고 필로폰 제조조직을 근절시켰다.

이에 따라 1990년부터 92년까지 3년간 한국은 국내에서 마약을 찾아볼 수 없는 소위 마약 진공시대(Drug Vacuum Period)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전에는 필로폰 1회 투약분을 5,000원에 구입하던 것이 이 기간을 거치며 가격이 20배 이상 폭등하여 필로폰 1회 투약분이 100,000원 이상에 거래되게 되었고, 이에 따라 93년부터 대만, 중국, 홍콩, 필리핀 등 동남아에서 제조된 값싼 필로폰이 한국으로 밀수입되게 되었다.

과거 필로폰 최대 수출국이었던 한국은 필로폰 수입국이 되었고, 국제사회에서는 이를 마약수출국이 수입국으로 전환된 최초의 성공사례라고 평가하였다. 하지만, 외국산 필로폰의 밀수입에 따라 국내 필로폰 사범은 다시 증가하기 시작하였고, 검찰은 공급조직을 위주로 단속을 전개하여 1995년을 정점으로 국내 필로폰사범은 다시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90년대 중반부터는 89년부터 91년 사이에 검거되었던 필로폰 제조기술자들이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여 비교적 단속이 허술한 중국으로 건너가 현지에서 필로폰을 제조, 이를 한국과 일본으로 대량 밀수출하기 시작하였고 1990년대 후반부터는 국내 경제난과 맞물려 다시 필로폰 중독자가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1990년대 초반에는 검찰에서 공급조직 위주의 단속을 실시하면서 필로폰의 국내 유통이 안되고 그에 따라 가격이 폭등하였으며, 청소년층에서는 값이 싸고 구입이 용이한 본드, 신나 등 유해화학물질을 흡입하는 사범이 증가하였다.
 

2000년 - 현재

급격한 개방화와 국제화 추세에 따라 외국과의 인적, 물적 교류가 확대되자 2000년대부터는 전통적으로 사용되던 필로폰에서 구미 등 선진국가에서 널리 사용되는 야바, 엑스터시 등 신종마약류가 국내에 밀반입되어 외국유학생, 외국인, 대학가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마약류 밀수출의 중간경유지로 한국을 이용하는 국제마약조직이 증가하기 시작하여 한국을 경유하는 마약류사범이 증가하고 있다

 

※ 출처 : 국가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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