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6. Autumn, 2017

 

  마약퇴치를 말하다 _ 권두언

“수많은 마약중독자가 양지로 나와 아름다운 가을 함께 하길...”
이경희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이사장
 

“어둠속으로 숨은 수많은 마약 중독자가 하루 빨리 양지(陽地)로 나와 우리와 이 아름다운 가을을 함께 하길 바랍니다.”

봄부터 농부가 땀으로 일궈온 곡식과 과일이 여무는 풍요로운 가을입니다. 마약류 폐해로부터 건강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전국 각지에서 힘쓰시고 계시는 여러분, 지난 봄ᆞ여름에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노력에 걸맞는 멋진 가을을 누릴 차례입니다.

저는 가을산을 물들인 빨간 단풍나무를 볼 때마다 왠지 모를 비장함을 느낍니다. 가을이 되면 단풍나무는 겨울을 대비해 스스로 가지 끝에 ‘떨켜’라는 특별한 세포층을 만들고 영양분과 수분 유출을 막습니다. 단단하게 떨켜가 만들어지면 잎으로 가던 수분공급이 차단되죠. 그럼 더 이상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지 못하게 된 잎은 본래의 초록빛을 잃고 노랗게, 붉게 물들어 땅에 떨어집니다. 아름다운 단풍은 사실 혹독한 겨울을 맞이하기 위한 그만의 치열한 생존 싸움의 증거인 셈 입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마약류사범은 1만 4000여 명으로 역대 가장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국민 중엔 우리나라를 ‘마약 청정국’이라 인식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혹독한 마약과의 전쟁에 대비해 스스로 잎을 떨어뜨리는 단풍과 같이, 먼저 ‘마약 청정국’이란 인식을 떨쳐 버리고 냉정하게 현실을 보고 맞춤형 정책을 통해 마약류 중독과의 치열한 싸움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올해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이하 마퇴본부)는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고 이로운 것은 새로이 취함으로써 마약류퇴치 정책 전반을 아우르는 컨트롤 타워로 우뚝 서기 위해 지난 2월부터 8월까지 4차에 걸쳐 정책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기존의 사업을 손보는 수준으론 기관의 위상을 높이고, 정체성을 확립하기 어렵다는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네 차례의 정책 세미나는 단순한 의견 교류의 장이 아니었습니다. 발제와 토론 과정을 통해 마약류사범의 교육과 재활, 대국민 예방교육 등 국내 마약류 정책 전반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정책 자문위원의 조언을 바탕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활발히 모색하는 건설적인 자리였습니다. 이 자리는 각계각층의 전문가가 참여한 다학적인 의견공유의 장이었습니다.

매번 뜨거운 도마에 오른 주제는 ‘마약류에 대한 국가 통계의 부재’와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전문가들은 마약류사범 등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없어 적절한 정책이 수반되지 못한다는 점을 국내 마약류 관리ᆞ정책의 가장 큰 문제로 꼽았습니다. 아무리 다양한 마약류 관리 프로그램과 정책을 시행해도 그 효과에 대한 논의를 이어나갈 구체적 수치와 근거의 부재로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관리와 정책 시행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마퇴본부는 이미 마약류 추적조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미약하게나마 마약류 통계 구축의 첫 발을 내딛은 것입니다. 올해 정책 세미나에 선 추적조사에 대한 토론도 진행됐습 니다. 추적조사 과정에서 마약류 중독자 개개인이 보이는 여러 특성을 파악할 수 있어 새로운 관점으로 마약류 중독 문제 해결이 가능해진다는 긍정적인 의견도 제기됐습니다. 반면 마약 중독자의 성향 때문에 지속적인 추적이 쉽지 않다는 점과 추적조사 초기여서 비교 대상이 없다는 것이 한계로 지적됐습니다. 사업 프로그램별 효과 분석을 위해선 예산 확충 등 정부 차원의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교육부는 올해부터 초ㆍ중ㆍ고교생을 대상으로 마약 관련 교육을 실시한다고 밝혔습니다. 때늦은 감은 있지만 매우 잘 된 일입니다. 하지만 최근의 범죄 양상을 볼 때 앞으로 여성가족부ㆍ문화체육부ㆍ국토교통부ㆍ고용노동부 등과의 협력도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교육을 담당할 전문 능력을 갖춘 예방상담사 등을 배출해 내는 것도 당면 과제가 될 것입니다.

 

현재 검찰은 마약류의 공급 차단을 큰 줄기의 마약류 예방ᆞ관리방법으로 삼고 있습니다. 마약류 예방ᆞ관리를 장기적 관점에서 보고 종합적인 대책ᆞ정책을 통해 마약류에 대한 인식을 높이며, 이를 통해 마약류 중독자 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마약사범의 검거도 물론 중요하지만 예방 교육의 확산에 더 큰 공을 들여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세미나를 통해서도 지적된 부분이지만, 탈북 새터민이나 다문화 가정 등에 대한 관심과 대처가 미흡한 실정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들에 대한 사회나 국가의 인식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앞장서서 문제를 제기하고 변화를 꾀해야 할 학계마저도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이들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한 맞춤형 마약류 정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광범위한 마약류 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지난 네 차례의 마약류 정책 세미나가 그랬듯 마퇴본부는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다양한 사람의 의견을 듣고 수용할 자세가 돼 있습니다. 어둠 속으로 숨은 수많은 마약 중독자가 하루 빨리 양지(陽地)로 나와 우리와 이 아름다운 가을을 함께 하길 바랍니다.

 

늘 마약 퇴치 활동에 최선을 다하는 임직원 여러분의 수고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백두에서 한라까지 마약없는 건강한 대한민국’을 이룩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7.10

이경희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이사장

2017년 제1~4차 정책세미나 주제
제1차 (02.23) 마약류 사범 재범 방지를 위한 형사정책적 고찰(박진실 변호사, 법률사무소 진실)
제2차 (05.11) 콜롬보플랜의 마약중독감소를 위한 전략(주세진 남서울대 간호학과 교수)
마약류 예방, 치료보호ᆞ재활교육 성과지표 개발(손애리 삼육대 보건관리학과 교수)
제3차 (02.13) 재활교육ᆞ치료보호 현황과 효과성 평가(한은영 덕성여대 약학대학 교수)
제4차 (08.31) 마약류 범죄 동향과 경찰의 대응(김산호 경찰청 마약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