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울 수 없는 상처 - 이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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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이 지났다. 매일 지겹도록 싸우던 아빠, 엄마. 숨 막히게 답답했던 학교. 그 모든 것에서 도망치듯 엄마의 지갑에서 몇 만원을 훔쳐내가출을 했었고, 며칠을 배회하다 결국 대문 하나 사이로 수 십개의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던 쪽방촌에 숨어들었다. 화장실 하나 수도꼭지 하나 제대로 성한 곳이 없던 곳. 옆집 사람의 기침소리, 발자국 소리마저 낱낱이 들리던 그곳. 그 곳에서 나는 정화를 만났다. 바로 옆방에 살던 정화는 자신의 친구와 삼 개월 전에 집을 나왔다고 했고 우리는 나이가 같아서였는지 서로 의지할 곳이 없어서였는지 몇 번 마주치지 않고도 금새 친구가 되었다. 서로 방을 오가며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고 어쩌다 돈이 생기는 날이면 라면이라도 끓여 서로를 불러 함께 나누어 먹었다. 정화의 방에서 자주 눈에 띄던 검정색 비닐봉지. 그리고 정화의 입에서 나던 이상한 냄새로 나는 이미 정화이가 본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예감했었지만 그것이 외롭던 내게 생긴 친구를 모르는 척 하게 하는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다 정화의 친구가 집에 들어갔고 정화와 나는 방 하나를 빼고 같은 방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기다렸다는 듯 정화는 내 앞에서 본드를 하기 시작했고. 검은색 봉지가 정화의 입에서 나풀거리기 시작하면 정화는 다른 사람이 되어 갔다. 무엇이 좋은지 실실 웃다가 울고,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기도 했으며 보이는 데로 부수고 던지기도 일쑤였다. 그런 정화가 무섭고 두려워 몇 번이나 말리고 본드도 숨겨 보았지만 정화는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는 내게도 본드를 권하기 시작했다. “야! 내가 그래도 니 친군데 나쁜 거 하라고 하겠냐? 이거 한번 해봐라. 생각하기 싫은 거 생각 하나도 안 나고 기분도 엄청 좋아져. 술 마시는 것보다 백배는 더 좋다니까.”라고 말하며 정화는 내게 검은 봉지를 내밀었다. 몇 번의 망설임과 고민 끝에 나는 자포자기 하듯 검정 봉지를 받아들었고, 정화가 가르쳐 준대로 해보았다. 매캐한 본드 냄새가 나의 목을 따갑게 하고 곧 머리가 어지러워져 봉지에 입을 때려는 순간 정화는 자신의 손으로 봉지를 다잡아 나의 입과 코에 대주었다. 수 십 번의 숨을 반복하는 순간. 아프던 목과 어지럽던 머리는 온데 간 데 없어졌고 정말 술을 마신 듯 알딸딸한 기분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가출이었지만 집과 학교에 대한 걱정, 당장 오늘 저녁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막막함, 그리고 가족과 친 구들이 그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고 본드는 그런 모든 근심들을 잊게 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본드 중독자가 되었다. 환각과 환상의 나락 속으로 나는 점점 추락하고 있었고 결국 본드 없이는 하루도 견디기 힘든 날이 시작 되었다. 친구들이 찾아와 주던 몇 푼의 돈이 수입의 전부였던 우리는 본드를 살 돈이 모자라 식사를 포기하는 날이 점점 늘어갔으며, 그렇게 몇 개월을 지내는 동안 두통과 불면증은 점점 심해져 왔고 정화와 나의 몸무게는 10㎏ 이상씩 줄어 갔다. 하지만 그 무엇도 이미 환각의 늪에 깊이 빠진 우리를 건져낼 수 없었다. 친구들마저 우리의 본드 흡입 사실을 알고 점점 찾아오는 횟수를 줄여 갔지만 우리는 본드를 끊기는커녕 본드를 살 돈을 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다. 중년의 아저씨, 내 또래의 학생 등 아무나 붙잡고 앵벌이를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해서라도 본드를 살 수 있는 돈이 구해지면 우리는 만족해 했다. 본드를 사지 못하는 날은 쪽방 버너에 꽂혀져 있는 부탄가스를 흡입하기도 했으며 약국을 돌며 산 각성제 수십 알을 먹기도했다. 불안과 근심속에 맑은 맨정신으로 깨어 있는 것이 오히려 불안하고 초조했다. 심한 우울증이 반복 되었지만 우리는 다시 본드를 흡입하는 것으로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리려 했다. 매일 같은 생활의 반복. 자신이 아닌 무언가에 의지해 환각상태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던 우리에게 삶은 더 이상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고, 결국 정화는 내가 잠든 사이 본드를 흡입한 환각 상태 속에서 깨진 유리병으로 손목을 그었다. 뚝뚝뚝 흘러내리던 검붉은 피를 보며 정화는 울고 있었고 다행히 유리병이 깨지는 소리에 일어났던 나는 정화를 말릴 수 있었다. 그 후로도 정화의 우울증은 점점 심해졌고 살기 싫다는 말 을 반복하며 수면제를 먹고 스스로의 몸에 상처를 내기도 했다. 나는 그런 정화에게 점점 지쳐가고 있었고 결국 얼마 후 정화가 다시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는 것을 보고 옥신각신 하는 도중 날카로운 모서리에 이마가 심하게 찢기는 사고가 나고야 말았다. 마치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피에 나는 너무도 놀라고 흥분해 내게 용서를 구하는 정화의 눈물을, 함께 병원에 가자는 정화의 간절한 부탁을 무시한 채 수건으로 이마를 감싸고 홀로 쪽방을 나와 응급실로 향했다. 20바늘을 넘게 꿰매야 했던 상처. 병원비가 없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엄마에게 연락을 했고 그 길로 달려온 엄마의 손에 이끌려 1년 정도의 가출생활을 끝마치게 되었다. 집에 돌아온 후 얼마동안도 심한 우울증과 금단현상을 겪었지만 직장마저 그만두고 나를 보살펴 주었던 엄마의 정성과 정신과 치료로 안정을 되찾았고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에서야 그 쪽방을 다시 찾았다. 하지만 정화는 이미 그곳을 떠난 뒤였고 나는 다시는 정화를 볼 수 없었다. 현실을 피해서 잠시나마 환각을 즐기고 싶어 했던 나의 어리석은 선택은 참으로 많은 것을 앗아갔다. 건강하던 나의 육체를 우울증과 두통에 시달리게 만들었으며 집과 학교로 돌아갈 수 있는 여러 번의 기회를 놓치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 아팠던 것은 나를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크나큰 실망과 배신감을 안겨 주어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10년이란 시간동안 나는 대부분의 것을 되찾을 수 있었다. 본드를 끊고 얼마가지 않아 우울증과 두통은 점점 사라졌고, 늦게나마 검정고시로 학업을 마쳤으며 죄스러운 마음에 가족과 친구들에게 더욱 더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그들도 나를 받아 들였다. 하지만 찢겨진 스무 방울의 상처는 아직도 나의 이마에서 생생히 살아있다. 그것도 함께 어린 날. 너무도 힘들고 어려웠던 날. 서로에게 전부가 되어 믿고 의지했던 소중했던 친구를 나는 그렇게 잃고야 말았다. 창백하리만큼 하얗던 얼굴. 검고 큰 눈동자가 너무도 선해 보였던 정화를 나는 본드와 함께 내 열여덟에 묻어야만 했다. 한번만 더 말렸다면, 나라도 환각의 늪 속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아마 정화와 나는 지금도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주는 좋은친구로 남았으리라. 나처럼 지금은 잘 살고 있으리라 믿고 또 믿지만…. 가끔 거울 속 내 찢겨진 상처를 볼 때마다 정화는 지울 수 없는 아픔이되어 내게 손짓한다. <2006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발간 수기집 '후회와 눈물 그래도 희망이'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