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는 것은 자기 자신이 결단해야 - 천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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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은 생명까지도 단축시킨다.

   송천재활센터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지금쯤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함께 마약을 했지만 검거된 적이 없었던 4 ~ 5년 선배들은 대부분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마 마약을 계속 하면서 환갑을 넘긴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땅을 밟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나는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새로운 삶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마약의 유혹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후회해도 과거를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후회하지는 않지만 마약이 없었더라면 더 바람직하고 넉넉한 생활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현재는 개인파산선고를 받은 상태이지만, 재활센터의 프로그램과 직장의 일로 몸도 많이 좋아졌고 정신도 맑아졌습니다. 다만 전과 때문에 최근 직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아쉽게도 놓쳤습니다. 낙오자라는 느낌이 들어 좀 서글펐습니다.

대마초를 하다.

    미군기지 근처의 마을에서 태어나 성장하였습니다. 어려서 친구들과 장난삼아 ‘기브 미 씨가렛’하며 미군들을 쫓아다니면 그들이 던져주는 담배를 피우곤 했습니다. 그렇게 담배를 배웠습니다. 15-6세 경, 미군들이 곰방대에 무언가를 넣어 피우고는 몰래 숨기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미군들이 간 다음 그것을 꺼내 피우니 아무런 느낌도 없었고 오히려 어지러웠습니다. 피우기 싫었습니다. 그러나 친구들과 어울리다보니 계속 주기적으로 피우게 되었고 대마 맛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당시 시골에 널려 있던 야생대마를 채취하여 피웠고 후에는 대마와 양귀비까지도 재배하여 사용하였습니다. 결국 1980년경 히로뽕을 사용하는 것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내 고향은 미군 문화의 영향을 받아 마약을 사용했던 사람들이 매우 많았습니다. 아는 사람의 80%이상이 마약을 했었습니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마약도 많았습니다. 도리도리라는 것도 우리나라에 소개되기 전에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모르핀을 맞기도 했습니다.

히로뽕까지 하다.

   20대 초반, 지역에서 함께 대마초를 하는 선후배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 친구가 히로뽕을 소개하자 아주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질이 높아서 그런지‘세상에 이런 것이 있는가?’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매우 좋았습니다. 이후 계속해서 대마초와 히로뽕, 대마초와 아편을 함께 혼용하였습니다.

   처음 구속될 때까지는, 매년 대마 농사를 지어 많게는 한가마니 정도까지 수확하였습니다. 곰방대에 넣어 빠꼼 담배처럼 피웠습니다. 하루에 30회 이상 피우기도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3모금 정도만 해도 기절할 정도였으나 몇 개월 계속 사용하자 담배처럼 되었습니다.

   양귀비도 재배하였습니다. 앵속을 하고 난 후의 환상은 최고였으나 너무 게을러졌습니다. 후유증도 너무 셌습니다.
   히로뽕에 완전히 취해 살지는 않았지만 거의 매일 1회 정도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약 15년 동안 이 세 가지 물질을 계속 함께 사용했습니다. 히로뽕과 앵속도 함께 사용해본 적은 있으나 너무 강력하고 혼란스러워 그 후에는 함께 하지는 않았습니다. 주로 히로뽕과 대마초를 하였고, 앵속과 대마초를 함께 하기도 하였습니다.

   90년대 중반, 마약관련 살인사건에 연루되면서 처음으로 구속되어 징역형을 살게 되었습니다.

구속되었지만 마약류의 폐해 인식하지 못하다.

   구속되기 전까지는 아는 사람을 통해 히로뽕을 비싸게 구입했었습니다. 오히려 교도소에서 선을 따서 나왔습니다. 선을 통해 약을 구입하여 일부는 사용하고 일부는 다른 사람에게 판매하는 생활도 하면서 약물에 더욱 취해갔습니다. 이때까지도‘마약이 나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건강을 해치는 것을 몰랐습니다. 사업이 잘 되어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다른 사람들과 달리 식사도 잘 하였고, 스스로 요리를 잘하여 음식을 해 먹었으며, 자주 보양식을 하여 몸을 보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90년대 중반에 구속되어 8월형을 살고 나온 이후 5년 동안은 잡히지 않고 계속 마약을 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 다시 구속된 후 사용과 수형생활의 악순환은 3번 더 계속 되었고 형량도 늘어갔습니다.

   예전에는 처자식에게 미안한 감정도 없었습니다. 네 번째 교도소에 들어가면서‘내가 왜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마약 하는 것을 알게 된 시점부터 부모 형제들은 계속해서 집에서는 호적을 빼버린다는 등 하지 말라고 강박하는 말은 했지만 중독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본 적은 없었습니다. 나는 마약하는 것을 숨기기 위해, 한창 마약을 하고 다닐 때에는 집에다가는 대마초를 비싼 담배라고 속였고 아무도 피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으며, ‘뽕’은 백반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친구 등을 통해 처갓집으로 내가 마약한다는 정보가 흘러들어가는 것을 차단하였습니다.

마약으로 망하다.

   나는 20대 중반에 중개업을 하기 시작하여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90년대 중반에는 술장사 등으로 사업을 확대하였으나 마약으로 구속되면서 점점 망해갔습니다. 세 번째 구속되면서 부터는 재산을 모두 탕진하게 되었습니다.

   교도소에서 1년을 보내면 사회 적응하는데 3년이 필요한 것 같았습니다. 또한 마약을 하다보면 허황된 꿈도 잘 꾸지만 되는 것은 없었습니다. 마약을 할 때는 돈에 대한 겁이 없어지고 절제를 할 줄 모르고 후회를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업을 벌이고 얼마 후 마약반에서 왔다 갔다 하면 그 때부터 다시 도피가 시작되고 결국 그 사업은 망하게 되었습니다. 네 번째 구속되기 전에는 처갓집 돈까지 모두 끌어 모아 사업했다가 결국 다시 구속되면서 모두 망하고 파산상태가 되었습니다. 내 가정뿐아니라 처갓집까지 못 살게 만들었지요.

   마약에는 장사가 없었습니다. 40대 중반이 되면서 이빨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틀니를 하고 있습니다. 이빨이 부서지고, 골다공증이 더 심해졌습니다. 뼈가 부러지는 것이 아니라 깨
졌습니다. 많은 후유증을 갖게 되었습니다. 공황장애도 생겼고, 대인기피증, 편집증, 의처증 비슷하게 사람을 심하게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돈 잘 쓰고 떵떵거리며 살다 망하여 못살게 되니 창피하다는 생각으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마약 때문에 이렇게 되었음을 깨닫고 마약에서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마약을 끊을 길이 없었습니다. 갱생보호공단에 도움을 청하여 송천재활센터를 무조건 찾아갔습니다. 당시에는 몸도 너무 좋지 않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바로 다시 징역을 가거나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꽉 찼었습니다.

새로운 삶을 배우다.

   송천재활센터에서 새로운 인생을 많이 배웠습니다. 이곳의 열린 생활을 통해 내 자신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매우 많이 가졌습니다. 또한 지금의 직업을 통해서도 세상을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특히 생존과 관련하여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내가 더 이상 마약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아도 몸과 행동이 달라지니 가족, 형제들이 모두 좋아합니다. 아내는 돈도 필요 없고 지금처럼 계속 단약만 유지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언론을 통해서도 얼굴을 가리지 않고 당당하게 내가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약을 끊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니 나 자신에게도 힘이 되고, 자연히 선은 모두 끊어졌습니다. 단약하고 처음에는 술을 많이 마셨으나 지금은 술도 몸에 잘 받지 않습니다. 기분도 좋지 않게 되고 우울증으로 빠지는 경향이 있어 술을 마시지 않지만 담배를 좀 더 많이 피우는 경향입니다. 그렇지만 지금도 고향에 가면 또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에 약간의 두려움은 있습니다. 따라서 고향을 떠나 서울 등에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인생사는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사실을 알지만 60까지는 고생할 각오로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단약을 위한 제언.

   끊는 것은 자기 자신이 결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어느 정도 나이를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건강과 힘(패기)이 있어서 아직까지 폐해와 아픔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 넘어집니다.

   마약을 끊으려고 하면 미련을 두지 말고 선을 모두 끊어야 합니다. 그러나 마약을 했던 그 느낌은 영원한 것 같습니다. 특히 여자관계에서.

   재활하는 과정에서 마약의 유혹은 계속 되었지만 마약할 기회를 뿌리치면 속이 후련하고 뿌듯함이 넘쳐 오르지만, 하고나면 후회가 몸을 감쌉니다.
   중독이 되면 계속 징역을 가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중독자에게 치료재활프로그램을 제공한다면 좀 더 빨리 마약류에 대해 깨우치고 빠져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마약은 진짜 하지 말아야 합니다. 10년을 끊었다 해도 다시 하면 끊은 것은 아닙니다.
 
   ‘한번만, 한번만’은 잘못된 것입니다. 마약을 하면 모든 것을 다 잃습니다. 빨리 끊어야 빨리 건강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마약은 특히 히로뽕은 사람의 골을 빼먹습니다. 온몸이 힘이 없어져 늘어집니다. 후회보다는 안하는 것이 낫습니다. 호기심이 잘못된 것입니다. 마약 앞에서는 수많은 재산도 필요 없었습니다. 결국 알거지가 되고 맙니다. 히로뽕 중독자의 대부분은 이혼 당했습니다. 인생 경험했다고 생각하고 이제는 열심히 살고자 합니다.

마약할 때에 나오는 성격 등.

   마약을 할 때는 돈에 대한 겁이 없어집니다. 절제를 할 줄 모르고 후회를 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마약을 사지만 나중에는 필연적으로 마약장사를 겸하게 됩니다. 결국 판매하다가 장타를 맞고 다시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게 됩니다.
   히로뽕의 경우, 호기심에 한번 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지금까지 예외적인 사람은 딱 한사람 보았을 뿐입니다. 여자에게는 더 영향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또한 아마추어들은 양을 맞추지 못하여 사고를 치기도 합니다.

   마약을 하면 사람이 간사해지고 변합니다.
   마약을 하는 사람은 주위의 모든 돈을 다 갔다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단약을 하니 남자 구실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즉 조루가 되었습니다. 의기소침해졌습니다. 너무 괴로웠습니다. 의사의 처방을 받아 1년 이상 조루치료를 받았는데 정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노력하면 되지 않을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2007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발간 수기집 "후회와 눈물 그래도 희망이2"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