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변하고 아내도 성장하다 - 차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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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믿지 않았습니다. 내 주위, 마약하는 사람치고 단약에 성공한 사람은 한명도 없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 마약을 하다 죽은 사람이 20명 정도 됩니다만, 이들을 빼놓고는 마약을 끊은 사람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교도소에서도 약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거의 100% 재발하였다고 봅니다. 나도 약20년을 교도소에서 보냈지만 단약을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교도소에서 나온 후 몇 개월 동안 새로운 생활을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마약으로 모든 것을 잃은 나에게는 현실의 벽은 너무 높았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냥 따분하기도 하고 심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송천재활센터에 찾아갔습니다. 아내는 재활센터에 들어가는 것을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갇혀 지냈는데 자유도 없을 것 같은 그런 곳에 또 들어가야 하느냐고 재활센터 1층 계단에서 까지도 다투었습니다. 그래도 왠지 경험해보고 싶었습니다.

영웅심에 마약을 하다.

   경상도의 한 도시에서 9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 일찍 폭력세계에 발을 담가 10대 중반에 벌써 두 번 징역을 살았습니다. 징역에서 나오니 동료들이 대마초를 하고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야생 대마초를 채집하여 흡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처벌 받는지도 잘 인식하지 못 하고 길에서도 피우곤 하였습니다. 이렇게 6년 동안 하였습니다.

   20대 중반, 나이트클럽에서 일하고 있을 때 우연히 한 종사자가 히로뽕을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당시는 히로뽕이 널리 퍼져 있는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나름대로 그런 바닥에서 날린다는 몇몇 사람만 하던 때로 영웅심도 작용하였습니다. 해보니 그 효과가 매우 좋았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마약은 점점 늘어 하루에 15 ~ 20회까지 잠도 자지 않고 계속 며칠이고 투약하는 생활을 계속하였습니다. 1주일씩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업소에서도 오락실 등에서도 월급이 나와 자금은 풍족했습니다. 70여kg이나 나가던 몸무게가 53kg까지 빠졌습니다.

   두 번 구속되어 징역을 살고 나오니 마약을 할 자금이 없었습니다. 결국 마약을 하기 위해 판매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약 판매 수익금은 마약을 사용하는 비용과 도박 및 유흥비로 모두 탕진하였습니다. 돈이 떨어지면 집에 찾아가 강박 하여 돈을 받아내고는 그 자금으로 마약을 구입하여 판매하고 또 탕진하는 생활을 반복하였습니다.

회복은 빠진 몸무게가 정상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다.

   나는 한 번도 치료를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부곡병원이나 치료감호소를 가본 적도 없습니다. 무조건 교도소에서 격리만 받았을 뿐입니다. 그러니 왜 마약을 하지 않아야 하는지, 단약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등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사회에서 약을 할 때는 잡혀간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단지 어떻게 하면 그 기분을 만끽하고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만 신경을 썼을 뿐이다. 이런 생활이 연속이었습니다.

   잠도 자지 않고 마약을 하면서 축난 몸은 교도소에서 징역살이를 하면서 회복되었습니다. 교도소에서 먹고 자고 하면 한 달에 18kg씩 몸무게가 불어나 정상이 되었습니다. 교도소에서는 붙잡히지 않고 어떻게 하면 더 은밀하게 마약을 할까만 연구하였습니다. 약을 끊겠다는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약20년을 교도소에서 보냈습니다.

   약물로 인한 후유증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단지 혈액이 끈적끈적해 지는 것은 많이 느꼈습니다. 교도소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마약을 해서 잡힐 때까지 하다가 빠졌던 몸무게는 교도소에 들어가면 정상이 되었습니다. 나는 이것이 회복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보통 판매로 들어갔기 때문에 징역 2년에서 2년 6월정도 장기간 살았습니다. 따라서 그렇게 오랫동안 엄청난 양의 마약을 했어도 몸이 그렇게 축나지는 않았습니다.

집에서는 내 마음대로 했습니다.

   나는 마약을 했어도 가정에 폭력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집에서는 대통령과 같이 내 마음대로 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집사람은 해주었습니다. 내가 돈을 원하면 아내는 빌려서라도 주었습니다. 집에 단돈 10만원을 가져다 줘본 적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약하는 것을 별로 말리지는 않았습니다. 약을 하기 전에는 늘 싸워서 경찰서에 잡혀갔고 징역도 살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약을 하니 일단 싸움을 하지 않았고 경찰서에서도 전화가 오지 않으니까 일부는 방관도 하였습니다. 또한 싸움은 돈을 물어주지만 마약은 돈을 물어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약으로 잡혀가면 교도소로 면회를 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도 부모님도 마약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교도소에 있을 때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단약을 하다.

   나는 집에 돈을 벌어다 준적이 한 번도 없고, 오히려 돈을 빼앗아 마약을 했을 뿐입니다. 빚도 지게하고 전세자금도 빼서 마약구입 자금으로 썼습니다. 집사람은 홀로 장사를 하면서 생활하였습니다. 교도소에서 나오니 집도 없고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내는 처가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처갓집도 갈 수 없었습니다.

   송천재활센터에 처음 들어와서도 약을 끊는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단지 이곳의 분위기에 접하다보니 약이라는 생각을 안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옛날의 그런 맛을 점점 느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했던 일에 대한 후회가 너무 많이 밀려왔습니다.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내가 더 이상 마약을 하지 않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도소에 가서 마약에 대해 간증을 하고 다녔습니다. 이런 내가 만약 마약을 다시 한다면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을 것입니다. 더 이상 마약을 한다면 갈 데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약 생각이 날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혼자만 느끼고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습니다. 옛날에는 단순하여 무조건 행동하고 보았습니다.
   지금 아내는 나에게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이 기대를 다시 허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내도 성장하다.

   나도 송천재활센터에서 엄청나게 변했지만 아내도 많이 성장하였습니다. 더 이상 마약을 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노력하니 처갓집 식구들도 매우 좋아합니다. 지금은 아내도 적극적으로 가족모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가족모임에 참여하면서 속에 있던 말을 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전에 아내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나에게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습니다. 약을 끊으라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아내가 나 때문에 너무 힘들어 한강다리를 3번씩 왔다갔다고 했습니다. 나는 몰랐었습니다. 아니 아내의 고통에 눈을 감았었겠지요. 그러나 이런 소리를 듣게 되니 내가 너무 하였다는 생각에 얼굴을 들지 못하였습니다.

   최근 가족모임에서, 아내는 내가 집에다 돈 요구를 할 때, 거짓말을 할 때, 이를 알면서도 내 말에 넘어가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아내는 또한 자신이 끝까지 믿어주었기 때문에 내가 회복의 길로 들어선 것은 아닌가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정말입니다. 나는 끊임없는 아내의 헌신과 믿음 때문에 마음을 잡았고, 이것이 고마워 더 회복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처음 내가 송천에 들어오고자 할 때에도, 아내는 자유가 없을 것 같은데 고생할 필요가 있나, 입구에서도 한 번 더 생각해 보라고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나오지 말라고 합니다. 나도 변했지만 아내도 가족모임에 참석하면서 많이 변했습니다. 아내는 매우 강해졌습니다. 예전에는 내가 눈에 힘을 주어도 아내는 안절부절 했으나, 지금은 거꾸로 집사람이 인상 쓰면 내가 눈치 보는 신세로 바뀌었습니다.(하하하)

   요즘 종종 송천재활센터를 나와 좀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말을 건네면, 아내는 그냥 한 달에 1천만 원을 번다고 생각하고 그냥 있으라고 합니다. 돈 벌겠다고 하다가 또 넘어질 수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도 아내는 다른 생각을 하지 말라고 계속 충고합니다. 항상 수시로 전화로 내 상태를 점검해 줍니다.‘ 몸만 건강하라고 합니다.’

   집사람이 좋다고 하고, 나도 마음이 매우 편안하니 매우 좋습니다. 외박을 하여 사람을 만나도 예전 같지 않고 덤덤해져 있습니다.
   지금 내 곁에는 집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의 계획.

   지금 요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내와 함께 배달을 위주로 하는 조그만 식당을 하면서 생활하고 싶습니다. 나는 송천재활센터 운영팀장의 삶을 온전히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습니다. 마약에서 벗어나 어려운 사람에 진정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마약에 대한 한마디.

   자신이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좀 건강하고 여유가 있으면 부모나 그 보다 더 힘 센 사람이 끊으라고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내가 완전히 망가지고 갈 때까지 가야만 약을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자신이 느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판매자도 중독자이므로 치료의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약을 20 ~ 30년 한 사람, 징역도 어느 정도 가보았던 사람들만이 마약을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약을 놓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해도 실제 먹고 살 수가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송천재활센터와 같이 재활교육 및 직업재활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제공했으면 합니다.

 
 
<2007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발간 수기집 "후회와 눈물 그래도 희망이2"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