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류 중독 문제, 수면 위로 꺼내야 합니다
2022년 대한민국에는 ‘마약과의 전쟁’이 선포되었다. 어느 때보다도 마약류 중독에 관심이 높아진 시기에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이하 마퇴본부) 신임 이사장으로 약사 출신 김필여 이사장이 취임했다. 마약이 일상으로, 일반인에게 깊게 파고든 현실에 깊은 우려를 표한 김이사장은 예방과 재활 활동에 앞장서 온 마퇴본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날로 고도화되는 마약류 범죄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마약류 중독에 대한 경각심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마약 없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설립된 마퇴본부의 새로운 방향을 고민하는 김필여 신임 이사장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김필여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이사장
Q. 12대 마퇴본부 이사장으로 취임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중차대한 시기에 취임하셨는데요. 소감과 각오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마퇴본부와는 인연이 깊습니다. 2004년 마퇴본부 경기도지부의 창립 당시부터 운영위원으로 함께했고, 최근까지 고문으로 활동했습니다. 지역 강사로 중독 예방 교육을 하며 마퇴본부의 역할과 중요성에 공감해왔는데요. 조직의 정점인 본부까지 진출하게 되어 뜻깊게 생각합니다. 사회적으로 마약류 중독 이슈에 관심이 높아진 시기에 취임하여 어깨가 더욱 무겁습니다. 우리나라가 마약 청정국 지위를 되찾을 수 있도록 더욱 역동적으로 활약해달라는 당부가 아닐까 싶습니다. 기대에 부응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Q. 약사 출신으로 지역본부에서 20년 가까이 활동하셨습니다. 현장에서 생생하게 마퇴본부의 필요성을 체감하셨을 것 같습니다.
지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예방 교육에 역점을 두었는데 늘 강사 인력이 부족했습니다. 동료와 후배 약사들에게 부탁해 함께 나서기도 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우리나라는 아직 마약 청정국이었습니다. 그때 충분한 교육을 했더라면 지금처럼 심각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마약류 중독은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 게 가장 좋습니다. 단 한 번이라도 손을 대면 완전히 끝이에요. 의지와 상관없이 신체적인 신경구조가 바뀌기 때문에 중독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심각성을 어린 학생들에게 일찌감치 알려야 합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고등학교 위주로 교육을 하다 아이들의 빠른 성장에 맞춰 중학생, 초등학생 대상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당시의 경험이 마퇴본부의 역할과 방향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Q. 현재 가장 심각하게 바라보는 마약류 중독 이슈는 무엇인가요?
합성 마약류가 다양해지고, 제조 방법이 인터넷에서 검색할 수 있을 만큼 만연해있습니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SNS인 텔레그램이나 다크웹을 통해 손쉽게 마약을 구매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의료용 마약의 오남용 문제 역시 심각합니다. 입수 방법이 합법적이라고 해서 약이 안전한 건 아니거든요. 중독의 폐해는 똑같습니다. 살 빼는 약, ADHA 치료제, 우울증 및 불면증 치료제 등의 남용도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10대의 마약류 중독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만큼 학생 대상 예방 교육이 중요합니다. 펜타닐 패치의 경우 쉽게 처방받을 수 있는데 반해 그 중독성에 대한 인식은 부족합니다. 미국의 경우 펜타닐로 인한 10대 사망이 많이 발생하고, 예방으로 막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 해독제를 배포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측이 어렵습니다. 심각성을 느껴야 합니다.
2015년 이미 마약 청정국 지위를 잃었는데도 지금껏 마약류 중독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심각하게 인식하고, 한발 앞선 정책과 관리가 이뤄져야 합니다.
Q. 어느 때보다도 마퇴본부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입니다.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마퇴본부의 역할과 임기 내의 구체적인 활동 방향이 궁금합니다.
마퇴본부의 설립 취지대로 마약류 중독 예방 교육과 재활을 통해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는 기본 방향성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다만, 이를 실행하기 위한 저변은 적극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재활센터를 확대해야 합니다. 현재 재활센터가 서울과 부산, 2곳뿐입니다.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법무부도 의지를 다지고 있는 만큼 마퇴본부도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재활센터 확대가 중요합니다. 재활센터는 근거리에 위치해야 부담 없이 많은 이들이 활용할 수 있습니다. 6곳의 추가 설치를 위한 예산을 올렸는데 아직 심의 중이고, 임기 내에 적어도 3곳, 호남권, 충청권, 수도권의 추가 설치는 이루려고 합니다.
둘째, 마약류 중독 관련 데이터를 구축해야 합니다. 4차산업 시대에 발맞춰 빅데이터를 활용한 중독자 관리를 시작해야 합니다. 마약류를 처음 어떤 상황에서, 무엇 때문에, 어떤 경로로 접했는지 데이터를 축적하려고 합니다. 세대별, 성별, 직업별, 상황별 등 통계 기반의 분석을 통해 더욱 정교한 정책과 교육자료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시민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홍보, 캠페인을 펼치고자 합니다. 시민들의 관심을 유발하는 새로운 방식의 예방 활동을 시도하고자 합니다. 왜 마약류를 접하면 안 되는지, 중독이 되면 어떻게 달라지는지 상식이 형성될 수 있도록 학생뿐 아니라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캠페인에 나서겠습니다.
Q. 취임 후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 처장과 만남을 가졌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가 오갔나요?
마퇴본부의 현안과 고충을 전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처와의 상생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일단 재활센터 추가 설치의 필요성을 피력했고, 공감을 얻었습니다. 서울 재활센터의 경우 본부와 공간이 분리되어 업무 효율이 떨어집니다. 두 공간을 통합해 시너지를 높이는 개선 방안도 논의했습니다. 수년간 지적된 12개 지역본부의 고용과 임금 문제도 공유했습니다. 식약처의 임금 지원이 되지 않아 약사회의 지원이나 후원금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지부가 있습니다. 불안정한 고용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예산 인상을 논의했습니다. 협업 방안도 머리를 맞댔습니다. 마퇴본부의 예방 교육을 받는 수혜자는 3%에 불과합니다. 빠른 기간 안에 대중을 상대로 경각심을 깨우기 위해 버스 홍보를 제안했고, 이를 흔쾌히 받아주는 성과도 있었습니다.
Q. 마퇴본부가 역동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여러 유관기관과 시민들의 협조가 중요할 텐데요.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전해주세요.
기관이든 시민이든 마퇴본부에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협업이 필요한 지역이나 기관이 있다면 기꺼이 함께하겠습니다. 마약류 중독을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로 받아들여 주셨으면 합니다. 마약류 중독은 당사자와 그 가족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건강을 해치는 사회적 병리 현상입니다. 주변에 이상징후가 보인다면 망설이지 말고 마퇴본부에 연락해주시길 바랍니다. 상담을 통해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마약류 중독은 음성적으로 숨어들지 않도록 오히려 수면 위로 꺼내 함께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마퇴본부가 회복의 길을 찾는 과정에 함께하겠습니다.